반구대 암각화 도로공사로 훼손 눈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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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 도로공사로 훼손 눈앞에

반구대 암각화 도로공사로 훼손 눈앞에
학술·예술계 수십명 성명... "세계최고 선사시대 그림 보존해야"

◇27일 열린 '반구대암각화 살리기' 기자회견에 참석한 인사들. 왼쪽부터 이태진 역사 학회장. 임세권 한국암각화회장. 이재호 '반구대를 사랑하는 시민연대' 대표

“문화관광부와 문화재청은 뭐하고 있는 것인가.”
훼손 위기에 처한 울산시 반구대 암각화를 살리기 위해 학회와 시민단체 50여 곳이 본격적으로 연대하고 나섰다.

임세권 한국암각화회장, 이태진 역사학회장, 변영섭 한국미술사학회장, 김홍남 이화여대 교수, 만화가 박재동씨, 소설가 심상대씨 등 이들 단체 대표들은 27일 오후 2시 서울 사간동 출판문화회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반구대 사태에 대한 정부의 무대책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현 정부 문화정책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문화관광부와 문화재청은 뒷짐만 진 채, 울산광역시로 하여금 세계 유수의 문화재며 우리 민족의 기원을 간직하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 턱밑에 포크레인을 들이대도록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성명에는 참석자들 외에도 김리나 미술사연구회 회장, 이백규 한국고고학회 회장, 박용운 한국사연구회 회장, 이승환 중국철학회 회장, 유홍준 명지대 교수,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 시인 신경림·김정환·안도현씨, 소설가 박범신·김영현씨 등 문화예술계 인사 170여명이 서명했다.

그동안 꾸준히 진행돼 왔던 반구대 보존운동이 관련 단체들 간 연대의 형태로 발전한 것은 울산시의 ‘공사 임박’이라는 목전(目前)의 위기를 맞았기 때문. 2000년부터 반구대가 있는 주변지역을 ‘선사유적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을 추진해온 울산시는 국도 35호선에서 반구대 입구까지 2.33㎞(폭 5~8m)에 이르는 도로 확장 공사를 내달 착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 ◇반구대 암각화 부분 어로·수렴·농경 등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의 생활상이 담긴 그림 296점이 그러져 있는 반구대 암각화(부분). /조선일보 DB사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면 대곡리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盤龜臺岩刻畵·국보 285호)는 “전 세계 암각화 중에서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유적. 너비 6.5m, 높이 3m 가량의 주암면(主岩面)과 20여m 범위의 암반 곳곳에 고래·개·늑대·호랑이·사슴과 같은 동물들의 형상과 고래잡이, 배와 어부, 사냥하는 모습 등 296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그림들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기원전 3000~300년에 걸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다른 선사시대의 암각화인 천전리 암각화(국보 147호)는 1.5㎞ 거리를 두고 이웃해 있다.

문화예술계가 울산시의 선사공원 조성 계획을 반대하는 이유는 안그래도1965년 사연댐 조성 이후 1년에 8개월 정도 물 속에 잠기는 바람에 원형이 훼손돼 온 터에 공원 등 위락시설과 대형 주차장이 들어설 경우 유적 주변 환경과 생태계 파괴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

참석자들은 “주변여건이 파괴된 뒤의 암각화는 더 이상 ‘신성한 유적지’가 아닌 단순한 전시물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며 “반구대·천전리 두 암각화가 있는 계곡과 하천·산세 등 자연환경이 사적으로 지정되고 환경보존특구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전문가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사업추진위의 구성도 요구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이럴 때 문화재위원회가 본연의 권위를 되찾아 국보의 훼손 가능성을 원천봉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울산시의 계획으로는 선사공원과 도로, 주차장(4000㎡) 건설에 총 사업비 180억원 정도가 소요될 예정이다. 울산시측은 “진입도로는 문화재보호법상 보호구역인 반경 0.5㎞ 밖에 있으며, 일정 지역의 출입은 통제할 것이므로 환경오염 염려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문화관광부를 방문, 오지철 차관을 면담하고 “일단 공사중단을 요구하는 문서를 보내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