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타일 인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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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은 가능한가?
[공공미술은 가능한가?] 1.왜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가? 1997년 1년 6개월이란 제작기간을 거쳐 높이 9미터에 무게만도 30톤에 이르는 대형 옥외조각 '아마벨'이 포스코빌딩 앞에 설치된 지 불과 이 년만에 철거시비에 휘말린 적 있다. 포항제철의 회장이자 세계철강협회 회장이던 최고경영자가 이 협회의 사무총장의 천거에 따라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에게 직접 주문하고 17억 5천 4백 만원이란 구입비와 1억 3천만원을 투입하여 새로이 문을 연 사옥 앞에 세웠던 이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는 포항제철 경영진의 결정이 언론을 통해 알려짐으로써 촉발된 '퇴출시비'는 전임 경영자의 잔재와 흔적을 지우기 위한 '정치논리'의 음모라는 비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포항제철 측이 제시한 철거 이유는 이 작품이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난해성을 지닌 고철덩어리인데다 심지어 추락한 비행기 잔해를 보는 것처럼 끔찍하여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포항제철의 경영진은 포스코센터를 설계할 당시 작품이 놓여질 장소는 작은 공원으로 계획되었으므로 작품을 철거하고 그 자리를 원래 계획대로 공원으로 조성하도록 결정했다고 한다. 사실 포항제철 경영진이 내린 이런 결정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왜 하필이면 경영진이 바뀐 시점에서 전임자가 설치해놓은 작품을 이 년 만에 철거하기로 결정했는지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 작품은 1%법과는 상관없이 포항제철(혹은 전임 경영자)이 독자적으로 판단하여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때 새로운 경영진의 결정을 '정치적 음모'로 보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철거를 반대하는 논리에 따르자면 '포스코센터는 이른바 1%법에 따른 '예술장식품'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그야말로 형식적인 구색 갖추기에서 탈피하여 건축물을 지으면서부터 건축공간과 미술작품이 건물 내·외부에서 조화롭게 서로 만날 수 있도록 미술품 배치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함께 만들어 미술품을 체계적으로 배치'했으며, '이런 접근 태도는 건축물과 관련된 공공미술작품에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까지 얻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아마벨을 인수하기로 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이 심의를 거쳐 인수를 유보함으로써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시비만 불러일으켰으나 이 논쟁은 공공미술의 개념과 의미, 가치, 또 공공미술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계기를 제공했다. '아마벨'의 이전 문제가 불거지기 이전에도 1984년 이후로 이른바 '건축물 장식'의 맥락에서 많은 조형물이 우후죽순 설치되면서 그것들의 공공적 의미와 관련하여 논쟁으로 부각되거나 심지어 건축주와의 담합, 덤핑, 리베이트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건축주와 작가들이 법정에 서야하는 결과까지 빚기도 했다. 이런 현실을 지켜보며 단순히 건축물 장식물로서가 아니라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좋은 공공미술을 설치하여야 한다는 기대와 요청이 더욱 커진 만큼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늦은 감 마저 든다. 2.공공미술 개념의 모순 일반적으로 공공미술(Public Art)은 그 개념에 있어서 모순되고 상호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우선 '공공'이란 개인보다 집단, 공동체의 관심과 이익, 사회적 가치를 염두에 둔 개념인 반면, 미술은 적어도 현대사회에서 사적인 것, 개인의 특수한 재능의 자유로운 표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율성을 자기존립의 근거로 삼아온 현대미술 또한 시대, 사회적 조건과 무관할 수 없으며, 사회적 수용과 용인, 평가에 의해 존재한다는 맥락에서 사회를 떠난 미술이란 성립할 수 없다. 현대미술의 자기모순은 예술을 전문가의 특수한(독창적인) 활동(창조)의 영역으로 한정하는 것으로부터 이미 발생하였다. 그 결과 현대미술은 사회적 관계, 필요, 요청과 무관하게 스스로 진화, 발전하거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거나 교육(강요)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공공미술을 주제로 한 이 글은 현대미술의 이러한 속성을 비판하는데 그 목적을 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의 관심은 현대사회에 그 의미와 필요에 대한 요구가 점증하고 있는 공공미술이 상호 충돌을 야기하는 합성어가 아니라 미술의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한 대안개념임을 밝히고자 하는데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공공미술에 대해 '공공 행정에 따라 공적 장소에 설치된 것으로서 공공의 이익과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권리의 향상 및 소통을 지향하는 미술작품 또는 행위'로 정의해 보자. 만약 이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공공미술의 범주에는 당연히 기념동상이나 도시미화를 위한 조형물뿐만 아니라 벽화는 물론 따블로 회화, 랜드스케이프 디자인, 스트리트 퍼니쳐, 간판 등의 광고물, 또 어느 부분에서는 공공장소에서 행해지는 행위예술까지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먼저 개인의 재산권에 속하는 건축물 앞에 세워진 조형물은 공적 행정과 무관하고 게다가 공적 장소가 아니므로 공공미술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사유재산이라 하더라도 여러 사람들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 부위를 점유하거나 인접하여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라면 공공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이른바 1%법이 사유재산에 조형물을 설치하도록 규정한 것도 이러한 공공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대중과의 소통을 지향해야 하므로 공공미술은 대중들의 보편적인 취향에 부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사실 대중들의 취향이나 미적 기준이란 애매하기 짝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많은 사람이 원하니까 이것을 세우고 저것을 철거해야 한다'는 논리는 거의 폭력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공미술의 설치와 관련하여 논란이 된 많은 경우가 이러한 '취미와 기준의 충돌'에 의해 야기된 경우가 많다. 셋째, 정부 등의 공적 기관이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기념조형물을 설립하였다고 가정할 때 여기에는 공공행정이 개입했고, 국민들의 의식을 통합할 수 있도록 쉽고 명확한 이념의 전달에 충실했으며 게다가 공공장소에 세웠다면 이것이야말로 공공미술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정의'의 문제와 '가치'의 문제가 혼재해 있다. 정의상 공공미술임에는 분명하지만 정치체제의 변화에 따라 이런 미술이 어느 날 철거된 경우를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 나치즘의 제3제국 미술, 스탈린 사후 철거된 그의 거대한 시멘트 초상조각, 소비에트연방의 해체와 함께 기중기에 실려 내려지는 레닌의 초상조각 등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넷째, 대중적 친화력이 높은 작품을 단지 공공장소에 놓아놓는다고 해서 공공미술로 규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공공미술로서 조건을 갖추기 위해 작품의 질적 수준뿐만 아니라 공공적 소유, 개방성, 공적 의미, 공공의 기대에 부응하는 내용과 형식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공공장소에 설치된(될) 작품이나 설치물은 늘 논쟁의 대상이 되거나 혹은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작가의 창의성과 대중의 기호가 과연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논란은 공공미술의 개념이 나타나기 이전에도 있어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3.공공미술 : 갈등의 사례들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만국박람회 때 완공된 에펠탑에 대해 많은 파리 시민들은 이 기괴한 철구조물이 파리의 경관을 헤친다는 이유로 비판했으며, 만국박람회의 상징물인 에펠탑의 골조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보며 소설가 모파상은 "이 괴물이 꼴 보기 싫어 파리를 떠나야겠다"고 푸념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에펠탑을 보지 않으려고 이 탑의 완공과 함께 개업한 2층 식당에서 매일 점심을 먹었다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 일인가? 모파상은 건조하고 기계적으로 보이는 이 철탑 때문에 대리석의 도시, 벽돌과 청동으로 만들어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의 우아하고 고풍스런 미관이 훼손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파리시민이든 이 도시를 방문하는 관광객이든 에펠탑이 보기 싫어 파리를 떠나겠다고 투덜대지는 않을 것이다. 당시 유럽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추진하였던 산업화, 근대화정책의 정수를 선전하는 만국박람회는 말 그대로 제조기술, 가공능력은 물론 자본력을 과시하는 장이었으므로 프랑스로서는 1851년에 영국이 박람회를 개최하며 선보였던 수정궁(水晶宮:현재의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미술관)을 능가하는 기술적 진보를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박람회운영위원회는 여전히 보수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던 건축가가 아니라 엔지니어인 에펠(Gustave Eiffel)에게 이 탑의 설계를 의뢰하였으며, 그 결과 에펠은 간단명료하지만 풍부한 의미와 싱징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기계적 공정'의 위력을 한껏 발휘한 탑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전통의 도시인 파리를 일약 문명의 도시, 현대성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로 만든 에펠탑은 기본적으로 수직적으로 상승하는 대칭구조에 의해 축조되었다. 네 개의 아치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가 균형을 이루며 상승하고 있으므로 멀리서 이 탑을 보면 지면에 발을 굳건하게 내린 거인의 형상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산업소재인 강철을 이용한 이 탑은 17세기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가 로마의 나보나 광장에 세웠던 분수조각인 <네 강의 원천>의 기본구조를 참조한 것이었다. 그 후에도 문인협회가 로댕(Gustave Rodin)에게 주문하여 제작한 <발자크상>이 실제 주인공과는 전혀 닮지 않은 유령과도 같은 석고덩어리로 완성되자 이 협회는 작품의 설치에 반대하였으며, 에밀 졸라 등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로댕의 작업실에 방치되다시피 하다 그가 죽은 뒤 한참 후에야 원래 계획장소인 몽파르나스에 세워질 수 있었으며, 역시 장식미술관을 위해 주문되었던 <지옥의 문>의 한 부분인 <생각하는 사람>을 크게 확대하여 1905년 팡테옹 앞에 세웠을 때도 파리시민들의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에펠탑이 축조된 지 30여 년 뒤에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자 혁명이념을 고취하고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세계만방에 과시할 목적으로 블라디미르 타틀린(Vladimir Tatlin)은 모스크바의 네바 강을 가로지르며 세워질 거대한 기념비의 설계에 착수했다. 에펠탑이 프랑스혁명 100주년이란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이라면 이 탑은 제3차 국제노동자동맹(코민테른)의 결성을 기념하는 것이었는데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이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전인 지구라트, 에펠탑을 참조하면서도 타틀린은 혁명의 역동성과 사회주의의 발전된 미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70도로 기울어진 거대한 철골구조물이 나선형의 골조에 의해 상승하는 형태로 설계했다. 에펠탑이 지상에서 수직적으로 상승하는 완벽한 대칭을 보여준다면 마치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는 이 기념탑은 그런 만큼 훨씬 강렬한 역동성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혁명과 삼 년에 걸친 내전으로 국가경제가 위기에 처해있던 소비에트연방으로서는 이런 기념물을 위해 그 어마어마한 강철을 허비할 수 없었으며 게다가 레닌조차 이런 계획을 예술가들의 터무니없는 환상으로 치부했기 때문에 축소모형만 전시하는 것으로 끝나버렸으나 계획대로 이 탑이 세워졌더라면 소련으로서는 1931년에 완공된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보다 무려 25미터나 더 높은 현대적 구조물을 미국보다 먼저 가질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1964년부터 1%법을 시행한 이후의 프랑스는 특히 1980년에 미테랑의 사회주의 정권의 주도로 공공미술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 랑은 의욕적으로 문화부 예산의 증액은 물론 공공 컬렉션의 확충과 함께 도시공간을 문화적으로 만들 수 있는 공공조형물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한편 현대미술지역기금(Fonds reginaux d'art contemporain)를 설립했다. 당시 프랑스의 미술계 인사들은 "대중을 미술관이나 전시회 안으로 이끄는 대신, 공공미술로 확대하여 미술을 움직여 대중과 만나게 한다"는 계획을 실천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파리의 중심부인 루브르미술관 앞에 있는 팔레 로얄의 안뜰에 1985년에 착수하여 그 이듬해 완공된 다니엘 뷔랑(Daniel Buran)의 <두 개의 지평>이란 작품을 행정부를 장악한 공화당의 사무총장이 이의를 제기하며 재심을 요구하자 공공조각의 설치가 이제는 정치적인 분쟁으로까지 발전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거의 두 달에 걸친 소모적인 논쟁을 거친 후 공화당 정부는 기어이 뷔랑의 작품을 완성하도록 허가해 줄 수밖에 없었는데 이 때 공화당 측에서 내세운 시비의 초점이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고 주변의 역사적 건축물과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공공미술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비교적 잘 갖추어진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1985년에 재연되었다. 뉴욕연방정부(General Services Administration)는 국제무역법원 앞의 연방광장(Federal Plaza)을 장식할 목적으로 세라(Richard Serra)에게 작품을 의뢰하여 1981년 악명 높은 <굴곡진 호(弧)>를 설치하였는데 이 작품이 세워지자마자 보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철거시비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당시 주문자였던 연방정부는 이 작품이 보행을 방해함은 물론 비디오 카메라의 작동을 가로막고, 마약 밀매자에게 좋은 장소를 제공해줌은 물론 폭탄테러와 같은 재앙의 잠재적인 원인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1989년 작품 철거를 결정해버렸다. 세라는 '이 작품으로 뉴욕연방정부 광장의 권위적인 성격을 제거하고, 이 장소의 정체성이 조각을 위한 장소 이른바 '특수한 장소'(specific site)로 재정의될 수 있도록 높이 3미터, 길이 약 36미터에 이르는 철판을 설치'하였는데 연방정부가 여러 이유를 들어 작품 철거를 단행하자 더글라스 크림프(Douglas Crimp)는 '작품을 옮기는 것은 작품을 파괴하는 것이다'(To remove the work is to destroy the work)란 세라의 주장을 인용하며, '세라의 작품이 놓여진 장소의 특수성은 공공장소이며 이 작품의 재료, 규모, 형식은 그 환경의 형식적 성격뿐만 아니라 60년대 후반의 예술에 충격을 받은 매우 다양한 대중들의 기대와 가정을 교차하는 것으로서 세라는 이런 공적 영역에 물을 튀기듯(splashing) 작품을 던져놓음으로써 이러한 전복이 암시하는 모순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이유를 들어 세라를 지지했다. 사실 세라의 '물튀기기'는 갤러리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서 미니멀리즘의 목표 또한 예술의 자율성, 순수성에 대한 모더니즘의 신화를 그 내부에서 비판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 작품은 연방정부광장이란 매우 공적 장소인 듯하면서 동시에 정치적 의미를 지닌 장소가 내뿜는 권위의 무게를 뒤흔들어 놓았으나, 대중들의 빗발치는 반대여론을 야기함으로써 공공미술에 있어서 그 공공이 과연 누구이며 그들에 의한 여론재판이 불러일으킬 문제는 없는지에 대한 논의의 계기를 가지게 만들었다. 세라의 작품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비단 이것 뿐만은 아니었다. 1977년 그는 독일 보쿰시의 차량 통행량이 많고 유동인구 또한 집중되는 역(驛) 앞에 <터미널>이란 작품을 설치하였는데, 이 작품은 독일 철강산업을 대표하는 보쿰의 노동자들로부터 격렬한 반대를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장소 특수성을 내세우며 장소를 재정의하는데 관심을 기울이던 세라는 이런 반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에게 공공조각의 상징성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까닭에 도시의 역사적 의미, 조각이 놓인 장소의 성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뻔뻔한 조각 이른바 '풍덩' 내던져진 조각(plop sculpture)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가 마침내 정당간 충돌로까지 비화했다. 즉 카셀도큐멘타Ⅵ에 설치되었던 세라의 작품을 구입하기로 결정한 사회민주당에 맞서 기독민주당(Christian Democratic Party)이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런 사례를 통해 우리는 과연 공공조각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해당 공공장소의 성격을 무시한 세라의 관점은 당연히 '공적 공간에 대해 모더니즘 미술이 저지른 폭력'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철거판정을 내린 판사의 "이 조각은 공공장소를 사유화한다"는 결론은 공공미술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조차 거부한 세라의 '폭력적 태도'에 대한 심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생동하는 도시환경을 위하여 다니엘 뷔랑과 리차드 세라의 사례는 다같이 공공미술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먼저 공공장소에 놓일 작품의 제작을 전적으로 작가에게 일임하는 경우 논란의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문제와 함께 작가의 명성만으로 공공조각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두 경우 모두 전적으로 작가에게만 의존함으로써 시민들이 의사를 개진하고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는 데서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공공조형물의 설치와 함께 해당 공간을 생동감 넘치게 만들기도 한다. 나의 주관적인 취향인지 모르지만 1984년 미국 텍사스의 윌리엄 광장에 이 지역의 특산물인 조랑말 무스탕을 모델로 만든 조각은 격자형의 기하학적이고 기능적인 건축물이 지닌 차갑고 비인격적인 분위기를 완화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본다. 아울러 신도시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환경조형물 설치계획을 수립, 현대적인 건축과 함께 52개에 이르는 조형물을 세운 파리 외곽 라 데팡스의 경우가 공공미술의 모범적 사례로 연구해야 할 대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버지니아 마크시모비츠(Virginia Maksymowicz)는 이상적인 공공조각에 대해 "과거와 같은 기념비적 성격이 없는 것, 조각 자체를 일상생활에 통합시킬 수 있는 것, 본질적으로 미술가의 개인적 진술을 피한 것, 비미술인들이 다양한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대중 및 소통의 개념을 신중하게 고려한 것"으로 규정했고, 샤 아르마자니(Siah Armajani) 또한 "공공조각은 대중을 협박하거나 모욕하거나 통제해서는 안 된다. 공공조각을 만든 미술가는 자신이 우선 한 의 시민임을 작가해야 한다. 자기표현을 위한 여지가 거기에는 없다"고 했다. 작가 입장에서 보자면 결코 유쾌한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인 전제조차 고려하지 않은 가운데 작가의 창의적 세계는 고유한 것이므로 그것에 간여할 수도 게다가 간섭할 수도 없다는 믿음 아래 모든 것을 작가의 판단과 결정에 위임해버림으로써 공공미술은 증발하고 공공미술을 빙자한 사적(私的) 미술이 난무하는 결과를 빚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거액의 돈까지 맞물려 있으니 환경조형물을 두고 온갖 해괴한 일들이 벌어져 왔던 것도 사실이다.(나로서는 몇 차례 환경조형물 관련 심사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이러한 해괴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목격한 바 있다.) 내가 이 난상토론에 기꺼이 참여한 것도 이러한 해괴한 일들이 더 이상 재연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도 간절했기 때문임을 사족으로 밝혀둔다. *이글은 6월 16일 토론회에서 발표된 최태만교수의 발제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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