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타일 인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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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평과 아리타(유전)
이삼평과 아리타(유전) "…밤에 혼자 전시실의 도자기 사이를 거닐다보면 제 귀에 여기저기 조선자기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 립니다. 돌아가고 싶다, 고향에 보내달라고 하는…. 그때마다 가문에서 한세기 동안이나 애지중지 모 으고 친자식처럼 보살펴 온 삼천점 조선자기는 역시 남의 나라 물건이었구나 하고 비감해 집니다. 요 즘에는, 전시실에 들어가기가 두렵습니다." 외국인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조선 도자기를 소장하고 있다고 알려진 오사카의 후지하라 리세이 도. "이조의 청화백자를 모으는 집"이라 해서 이름까지 ''''리세이도''''인 그곳의 5대 주인 후지하라 도시에와(42)씨의 말이다. 안에서 소중하게 운반되어 온 상자를 싼 하얀 보자기를 풀면서 그의 손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아 직 외지인에게 보인 적이 별로 없는 명품으로, 삼백오십여년 전쯤의 이삼평 작품 이거나 그의 지휘하 에 만들어진 조선 도공의 것으로 추정된다 고 말했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도공들의 원혼을 외면할 수 없어서 언젠가는 이것들을 모두 한국에 돌려 보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차마 정을 끊을 수가 없고… 돌아간다 해도 (우리 가문이 그래왔던 것 처럼) 일백년, 일천년 잘 보관하여 빛을 낼 수 있을 것인지…." 당신네 나라에서 말이오, 물론 그 마지막 말은 나오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나 역시 그런 걱정일랑 말고 돌려나 달라고 쾅쾅 말할 수가 없었다. 호흡을 고르며 보자기를 풀자 상자 안에서는 계집아이의 속살같은 청화백자 사면병이 수줍게 모습 을 드러낸다. 깨끗하고 고결한 모습이다. 그는 이 작품이 대도향 아리타의 고이마리(이마리는 아리타 옆의 지명이자 옛백자이름)로, 비록 일본땅에서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틀림없는 조선백자라고 일러준 다. 당시 일본인들은 태토의 문제뿐 아니라 소성 기술에 있어서도 열악해, 저런 고열로 구워낸 우아 한 경질자기는 꿈꿀 수도 없었다 한다. "보십시오. 저기 남화의 세계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저 신비한 매력에 혼을 뺏겨 5대를 이어 들어 갔지만 아직 그 끝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도시에와가 말하고 있는 중에 작은 문이 열리고,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앉은 4대 주인 히로시(75)가 나온다. 그는 낡 은 고서 목록들을 한아름 가지고 나와 조선 도자기 수집의 가력을 설명해 주었다. 간 간이 서울 남산(남산정 이정목)에 있었다는 경성미술구락부며 간송(전형필·1906∼1962)같은 이의 이 름도 나온다. 그는 다시 그윽한 눈길로 청화백자를 애무하며 결론지었다. "이것은 도신의 손에 의해 서가 아니면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이라고. 조선 도공 이삼평. 고문서에 ''''조선출신 금강인''''이라는 희미한 기록 하나가 남아 있을 뿐인 피점 령국의 일개 도공은 일시에 일본인의 미의식에 혁명을 일으켰고 사람들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때, 왜 그랬을까. 나는 불쑥 묻고 말았다. "이거 얼마나 갑니까?". 이 천박한 질문 하나에 실내에 흐르던 투명한 공기는 높은 데서 유리컵이 떨어지듯 산산조각이 나버 리고 말았다. "이 시간에는 가급적 가격이 아닌 작품의 혼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만… 굳이 말씀드린다면…." 5억 엔쯤이란다. "신품을 앞에 두고 저희가 가급적 가격 얘기를 안하려 하는 것은… 다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밭에 있는 두 소중 어느 소가 밭을 잘 가느냐는 질문에 소가 듣는다고 농부가 질겁을 했다는 얘기는 알고 있지만 사람 들의 말을 도자기가 듣는다는 것은 또 난생 처음이었다. 이쯤되면 조선도자기는 그들에게 종교였다. 몇개의 이삼평류 고자기들을 더 보고 저물녘이 되어서야 리세이도를 나왔다. 밖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1991년의 어느 가을밤. 그때도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뉴욕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오 늘 메츠(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가서 한국도자전 을 보았노라 고. 그런데 그 전시의 이름이 ''Korean Ceramics from the ATAKA Collection'' 이었노 라고. 아타카라면 그것이 저 오사카에 동양도자기미술관을 세운 일본회사 그 아타카 아니냐고. 자기 서가에 꽂혀 있는 고단샤 ''이조의 민화''에 이어 메츠의 아타카 조선도자전은 충격이었노라고. 샌프 란시스코로 시카고로 다니다 온 조선백자들이 참 피곤해 보이더라고. 박물관을 떠 나오며 육친과 헤 어지는 것 같아 혼자 울었노라고…. 나도 피붙이를 두고오듯 타이유지 표석이 서있는 뒷골목 리세이도의 누런 벽돌 1층집을 몇 번씩이나 돌아보았다. 다음날 일찍 아리타로 갔다. 도신의 자취를 찾아, 열차편 으로 한나절을 달려 작은 시골역 아리타에 도착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사백 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엊그제인 듯 고향 떠난 한 조선 도공이 거기 서 있었던 것이다. 이삼평 13대 가네가에상. 우리네 시골 논둑길같은 데서 마주칠 법한 촌로의 모습그 대로였다. 두번째 놀란 것은 아리타를 굽어 보는 거대한 이삼 평의 비. 산 하나가 통째로 받침돌이 되어 까마득히 저편의 이삼평 비를 떠받치고 있었다. ◈ 조선 도공 이삼평(?∼1655). 아리타·이마리 고자기의 비조. 이참평으로 불리기도 한다. 조선의 금강(공주?) 출신으로 전해져 공주 에서 동학사 가는 삼거리 야산의 중턱에 기념비가 서 있고 일본 아리타에는 거대한 비석, 신사, 고요 적, 묘소 등이 있다. 아리타에는 그의 13, 14대손이 살고 있다. 그의 일본행을 두고 일본측에서는 자 발적이었다고 하고 있으나, 임진-정유 양란 때 끌려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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