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타일 인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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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사발의 다양성을 위한 제안
박순관 올 8월에는 광주, 이천, 여주 등 전국에서 세계도자기엑스포가 동시에 개최됨으로써 우리의 도예 를 국내외적으로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뜻 깊은 해가 될 것이다. 도자기 중에는 꾸준히 증가하는 다도 인구에 힘입어 가루차(抹茶)를 마시기 위한 찻사발도 점차 로 다양하게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사발이라 함은 원래 밥이나 국, 술 등을 담는 그릇을 말하지만 여기에서는 주로 다도에서 쓰일 정 도의, 보다 수공예적이며 예술적 가치가 높은 사발에 제한을 둔다. 그러한 사발로는 막사발 종류 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 분청사기, 청자, 백자 순이다. 막사발 중에는 정호(井戶) 찻사발(일본말 로 이도자왕) 류의 것이 가장 많은데, 그것은 정호사발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있다는 사실과 함께 일본 다도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경향을 우리가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굽도 리에 유약 말림(일본말로 가이라기)을 아주 극대화시켜 유약이 크게 말리도록 표현한 것들이 두드 러지게 많아지고 있다. 그 동안 고급스럽고 완벽한 미를 보였던 청자와 백자 사발은 점차 그 숫자 가 적어지고 있으며, 진사백자 사발과 흑유 사발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현대도예의 발전적 인 상황에 비하여 창작적인 사발의 보급이 미약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도예가들은 아직도 일본 다도인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사발들을 모방하 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우리의 다도계 역시 우리만의 새롭고 창작적인 찻사발을 원하거나 고르는 안목이 부족하다는 분위기를 느꼈다. 우리의 말차 다도가 그렇지 않아 도 일본의 다도를 모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마당에 도예가들까지 일본 다도인들이 오래 전부터 만들어 놓은 찻사발에 대한 규약에 얽매여서 모방에만 머물러 있으니 우리의 다도계나 도 예계로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사라진 전통을 재현하려는 의도는 마땅한 일이지만 상당부분 일본 취향의 모방품 사발에 너 무나 치우쳐있다는 것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모방과 재현에 빠졌던 지난 일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예전에 어느 도예가가 만든 청자가 옛 고려청자에 가까워졌다며 박물관 관계자가 나와 신문에 호 들갑을 떠는 일이 자자했다. 그 내면에는 100퍼센트를 고대하는 듯한 뉘앙스가 깔려있었으나, 수 백년의 세월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움을 완벽히 재현할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그것이 이루어진다 해도, 기쁨을 맛보기도 전에 박물관과 골동계는 대 혼란을 맞았을 것이다. 새로 만든 것과 옛것을 구분할 수 없게 될 일은 예견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또한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된 '喜左衛門'(기자에몽)이라 이름 붙여진 정호사발과 똑같은 '노란색 찻사발'을 재현했다고 하여 유명해진 분이 있다. 얼마 후에 기자에몽은 희고 투명한 유약에 의하 여 태토(흙)가 살포시 비치는 색이 원래의 색이었는데, 그 것이 오랫동안 차를 마신 뒤에 색깔이 변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 걸 가지고 수많은 실험과 각고의 노력을 거쳐서 어떤 특별 한 재를 섞고 나서야 재현할 수 있었다고 하였으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씁쓰레한 미소만 지어질 뿐 이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어느 중견 도예가는 자신의 사 발을 일본 책에 실린 문제의 그 사진과 대조하며, 자신의 것이 더욱 정호사발에 가까운 색이 아니 냐며 자랑하고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원래의 색보다 붉은 색이 진하게 인쇄되었을 뿐이었는데 도 말이다. 이토록 무작정 재현만을 능사로 하다가는 우스운 꼴이 되며, 이것은 도자기의 발전을 위하여 아무 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재현품만을 고집하는 다도인들이 많은 한, 도예가들에게 만 그 책임을 떠넘길 수도 없는 일이다. 또 한가지 우려되는 일이 있다. 조선조 말에 일본으로부터 한국에 주문해서 만들어 간 고혼(御本) 이라고 불리는 사발들을 순수한 우리의 옛 것이라고 여기면서 모방을 하는 일이 다. 예를 들어 雲鶴(운가꾸), 金海(깅까이), 割高臺(와리고다이), 伊羅保(이라보), 彫三島(호리미시 마), 魚屋(도도야), 吳器(고끼) 등의 대부분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한국의 흙, 불, 그리고 도 공의 솜씨를 빌어서 만든 사발을 일본으로 수입된 것이다. 이것들은 이미 일본인들의 취향대로 해 석되고 변질되었기 때문에 순수한 우리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더욱이 이미 변해버린 御本(고혼)을 모방한 御所丸(고쇼마루)까지도 우리의 것으로 여기곤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것과 는 너무도 다른 완전한 일본의 형태요, 색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정확한 설명도 없이 그저 우리의 것이라며 공방이나 가게에 놓여져 있다. 필자는 위에서 말한 사발들을 사용하는 일이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보기 좋고 쓰기에 편리하면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순수한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우리의 옛 사발들에 대하여, 그것을 만든 한국인들은 물론 세계의 어느 나라 사람들 도 느끼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오직 일본인들만이 찾아낸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책에 서술하고 있 다. 하지만 그들의 이론과 규약들이 그대로 우리의 사상이나 심성에 맞는다고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 고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려는 사실이 혼란스러운 일이다. 순수 일본의 것으로 樂(라꾸)사발과 같 은 특성을 가진 사발까지도 외면하는 편협성에 고혼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일은 어떻게 이 해해야 할 지 염려스럽다고 하겠다. 서양의 도자기 책에는 우리의 막사발들이 흔히 티볼(Tea bowl)로 쓰여 있다. 이것은 물론 일본 책들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가 하찮게 여기던 막사발은 세계의 도예가들에게 자연스 럽고, 소박하며 예술적인 찻사발로 자리잡고 있어서 한국의 여러 박물관을 찾는다. 하지만 아무 리 둘러보아도 그것들을 볼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박물관 측은 막사발이 한국의 도자기 중에는 하품에 속하는 민중들의 사발이며 심지어는 조악품이기 때문이란 답변을 들어야만 한다. 막사발과 마찬가지로 옹기도 한국의 도자기를 소개하는 범주에 속하지도 못한 하찮은 것이었다. 점차로 쇠퇴해 가던 옹기가 지금은 세계의 도예가들이 우리의 도자기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변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옹기를 볼 수 가 없다. 프랑스의 루블박물관이나 이탈리아의 세계도자박물관에는 그들이 만든 옹기가 전시되 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옹기가 벨지움이나 일본 등 유수의 박물관에 멋진 모습으로 전시되고 있 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밥사발, 국사발이 이미 국제적으로 Tea bowl로 알려 진 이름을 언제까지 방관할 것이며, 막사발과 옹기를 볼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언제까지 기다 려야 할 것인가? 우리 국립박물관 관계자들의 생각에도 변화를 가져올 때가 왔다고 생각된다. 현재 세계 최고의 도자기 왕국이 된 일본 도자기의 발전은 다도의 발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전통도예가는 물론, 창작품과 아울러 틈틈이 각자의 특성을 함축시킨 사발을 만드는 현대도예가들이 많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 의 사발들만 다 보아도 일본 도예의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할 정도이다. 반면에 아직까지도 한 국의 도예계와 다도계는 창작 사발은커녕 일본인들에 의한 규약에 너무도 얽매이고 있다는 것은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의 찻사발에 대한 규약은 많고도 복잡하다. 알고 보면 정확한 규약도 없이 다도 계파에 따라 서 다르고 선생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발에 대하여 고정 관념을 갖는다거나 편협한 생각은 금물이며, 다도인들은 우리에게 맞는 다도구와 함께 그 사용하 는 방법과 예절을 끊임없이 개발하여야 하며, 도자기에 대한 보다 깊은 상식을 얻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된다. 아울러서 도예인들은 무작정 사발의 규약을 지키려 한다거나 모방하기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다 도를 생활화하면서 실용성과 창작성을 접목시키도록 해야하며, 흙과 불에 대한 철학이나 도자기 가 담고 있는 여러 가지 복잡한 기술에 따르는 예술성을 다도인들에게 실천적으로 보여주며 이해 시키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요즘에 태조 왕건이라는 TV프로에 삼국 시대 토기가 등장하고, 차를 마시는 장면이 자주 방영되 어 일반인들도 토기에 대한 상식이 높아져 가고 있다. 따라서 찻사발에도 토기나 옹기로 된 사발 뿐만 아니라, 이미 사라져 간 칠기나 석간주 등을 응용한 보다 나은 사발의 보급과 아울러, 현대도 예의 다양한 창작성을 담은 아름다운 찻사발들이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본 글은 월간 다도 2000년 12월 호의 원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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