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타일 인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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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길 디자인의 속뜻
Insadong Street: Design Intention 김진애, (주)서울포럼 대표, 인사동길 설계자 -------------------------------------------------------------------------------- 인사동이 워낙 대중적이고 이목이 집중되는 동네라 인사동길 설계에 대해서 그동 안 주로 대중적인 표현을 통해서만 설명해왔다. 내 속뜻은 드러내지 않았었다. 설계 팀내에서도, 발주처인 시청, 주민들, 전문가들에게도, 설계 중 또 공사 중에도 내 속에만 담아두었었다. 이제 온갖 고개를 넘어 드디어 마무리가 된 시점에 좀 더 개념적인 언어로 내 속뜻을 토하고 싶다. 길 디자인은 정말 어렵다. -------------------------------------------------------------------------------- 첫째는 `디자인 없는 디자인' Designless Design `디자인하지 않은 듯 디자인하는 것', 얼마나 어려운가. 어떻게 하면 손대지 않을 수 있을 까, 또는 손대지 않은 듯 손댈 수 있을까가 고민의 시초였다. 애당초 설계제안경기에 참여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눈에 띄는 오버디자인이 되기 십상인 거리 설계, 인사동만큼은 그 렇게 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작용했다. 전돌 점토벽돌을 바닥 소재로 고르고 생산하고 시공하게 하는데 무진 애를 쓴 것도 이 때문이다. 인사동길은 `그저 가만히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다른 모든 것이 다 변화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 길이라는 공간의 기본, 길바닥, 즉 `땅'이었다. 오래 전 그곳에 있었고 오랜 후에도 그 곳에 있을 듯한 소재여야 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디자인 없는 디자인으로 하기란 정말 어려웠다. 왜 그 곳에 그렇게 있을 수 밖에 없는가를 푸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 단서는 역시 사람이 어떻게 쓰는가에서 나온다. 인사동길의 눈에 보이는 장치들은 하나하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사람들이 `그냥' 쓰게끔 하는 것, 그것이 디자인 없는 디자인 아닐까. 둘째는 `파장 일으키기' `혼돈질서로 들어가기' Wave Effect - Ordered Chaos 무언가 하나 만들면 또 다른 무엇을 일으키는 것. 그런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 좋은 디자인의 속성일 것이다. `혼돈질서'의 속성일 것이다. 인사동길, 그러니까 이번 설계의 주 대상인 종로에서 안국동 로타리에 이르는 큰길은 무척 중요하지만 또 그리 중요치 않다. 인사동에서 훨씬 더 중요한 공간은 사실 `골목'이다. 일단 들어가면 더 큰 세계이면서 그리 잘 탐험하러 들어가지 않는 골목, `12 큰 골목과 12 작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미로같은, 수수께끼같은 공간이다. 마치 `하나의 잎새'의 줄기조직'처럼, 마치 인체의 혈관처럼. 마치 나무 뿌리처럼, 혼돈스럽게 보이면서도 질서있는 시스템이다. 이 골목세계로의 파장을 일으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돌포장도 그런 파장 장치다. 골목 안에 `나도 깔리고 싶다'고 유혹하고 싶었다. 골목 앞의 `장대석'이나 `골목지방석' 골목 앞만 밝히는 `골목등'도 그런 장치다. 골목에 들어가고 싶게 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골목으로 파장을 일으킬까? 큰 의문부호다. 하나의 행위는 다른 행위를 이끈다. 고난 끝에 북인사동길에 소나무 두 그루를 심었더니, 사람들이 나무 심기를 더 원한다. `오죽'을 심었더니 옆 건물 앞에 오죽이 심어졌다. 돌에 문양을 새겼더니 사람들이 그 뜻을 묻는다. 꽃을 심었더니 쓰레기 버리기 주저한다. 골목 안에 포장을 했더니 다들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길을 가꾸니 상점이 같이 가꾼다. 그렇게 좋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까. 셋째는 `시간 디자인' Time Design 시간과 함께 변화하는 것. 도시의 길에서 중요한 속성이다. 두가지다. 생명체 그리고 사람의 씀씀이와 손길. 어릴 적 놀이의 그 말을 연상했다. "감자가 싹이 났다, 잎이 났다, 묵…" 촌스럽고 옛스러운 인사동 뒷골목들을 떠올렸다. 봄-여름-가을-겨울로 변화하는 골목공간. 작은 마당, 텃밭과 화분, 석물과 물확으로 사계절 변화하는 집 앞의 작은 공간들. 인사동길의 텃밭과 물확화분은 그래서 태어났다. 봄이면 씨뿌리고 모종심고 여름이면 덩굴 올라가고 꽃피고, 가을이면 열매맺고, 겨울이면 벌거벗어 겨울장치들이 들어가는 것. 뒷골목처럼 촌스럽고 옛스럽고 사람 손길 느껴지는 큰길. 많은 사람들이 `실패할 것'을 단언하곤 한다. 인사동에서도 실패한다면 우리의 도시에서 `도시 속의 작은 생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 실패하면 그 때 바꾸더라도 꼭 한번 시도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사람들의 손길이 닿기를 바란다. 인사동의 석물들에 과연 앞으로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문양과 조각들이 새겨질까. 시간이 가면서 곱게 시간의 때와 사람의 손길이 묻을까. 혹시 겨울에는 차가워진 돌 위에 색색 비단 방석이라도 상점에서 올려놓지 않을까. 때 마다 인사동의 마당들에서 다양한 이벤트들이 자연스럽게 생길까. 기대되는 대목이다. 넷째는 `기억 떠올리기, 의미 부여하기, 상징 만들기' Memory Meaning Symbols 길이란 기억의 장치다. 기억을 통해 사람들에게 떠올려지고, 그 이름을 입에 올리고 거기서 있었던 일, 장면, 만남을 기억함으로써 의미가 더해진다. 인사동에 그런 기억의 장치, 의미의 장치, 상지의 장치의 단서를 넣고 싶었다. `전통'이란 `기억, 의미, 상징'이 아닐까. 인사동의 여러 공간들에 이름을 지어 새겨넣은 것은 이 때문이다. `남인사마당, 북인사마당, 인사동 네거리…' 인사동길에 예전에 시내가 흘렀던 것을 기억하여 물을 만들고 이름을 지어 새겨넣은 것도 그 때문이다. `남인사물동이, 북인사물길…' 남인사마당 느티나무 밑 돌평상 위에 인사동 골목패턴을 이용한 `인사동 잎새'를 새겨넣은 것도 그 때문이다. 복두꺼비와 물고기 문양을 새긴 것도, 돌에 `매난국죽' `인사동 백수백복' `연꽃잉어' `인사동 8길상'을 새긴 것도 인사동 네거리의 볼라드에 구멍을 판 것도 이런 이유다. 사람들이 과연 이런 기억을 떠올리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갈까. 인사동에 사랑의 장면, 만남의 장면, 전통 발견의 장면들과 그 기억이 새겨지길 바란다. 이 시대의 `새로운 전설 만들기'라고 할까. 다섯째 `몸에 닿고 손으로 만지는 디자인' Tactile Design, Not-Visual Design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중요한 것이지만 시각 외에 잃어버린 몸의 다른 감각들을 새삼 찾게 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많이 앉아보게 할 것, 기대보게 할 것, 보는 분수가 아니라 흐르는 물, 넘치는 물, 떨어지는 물을 만들어 손을 적셔보게 할 것, 쓰다듬어 보고 싶게 할 것, 나무 테라스 위에서 또는 전돌 포장 위에서 맨발로 걸어보고 싶게 할 것 등등... 우리의 건축이나 도시는 지나치게 시각 위주다. `보기에 아름다운 것'은 좋은 것이지만, 아마도 `만지고 기대고 싶어하게 하는 것'은 더욱 사람 냄새 나는 건축, 도시 아닐까. `길'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몸에 닿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여섯째, `교활한 유도장치 만들기' Saavy Installation Mechanism 도시의 길은 가지각색 사람들이 가지각색으로 쓰는 공간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길 공간과 길 장치를 통해 어떤 단서를 찾아 어떻게 쓸까. 나는 `감히' 교활하다고 말하고 싶다. 인사동의 하나하나 장치는 사실 교활한 심정으로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어떤 것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예컨대, 북인사동길에 골목 가로등만을 심은 것, 남인사동길에 가로등을 어슷하게 배치한 것은 플래카드 걸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치다. 그런가 하면 남인사마당, 북인사마당의 입구 열주 나무기둥들은 보다 전통적인 수직 휘장들을 걸게 유도하는 장치다. 열주기둥을 심은 또 다른 이유, 매번 축제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울긋불긋 페인트 칠한 아케이드를 설치할 필요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종로와 율곡로에서 멀리서 보고 사람들을 색다른 동네로 끌어당기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어떤 돌은 여유롭게 앉을 수 있게, 어떤 돌은 그 위에서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릴 수 있게, 어떤 곳은 좁아서 드러누워 자지는 못하게 크기를 정했다. 어떤 곳에는 무단 주차 하지 못하게, 어떤 곳에는 포장마차 들어오지 못하게, 어떤 곳은 사람들이 많이 앉게, 어떤 곳은 사람들이 앉지 못하게 돌의 위치를 정했다. 구배가 있어서 꼭 필요한 곳을 빼고는 일부러 돌을 바닥에 고정시키지 않은 것도 그렇다. 쓰임새에 따라 위치를 조정할 수도, 보행전용도로가 되면 아예 아무것도 없으면 가장 좋을 좁은 북인사동길에서 쉽게 들어내기 위함이었다. ****** 길 디자인은 정말 어렵다. 건축물보다, 도시보다 어렵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쓰고, 서로 다른 기대를 가지고 있고, 차와 사람이 충돌하고, 주차와 포장마차가 충돌하고, 안전 문제와 미관 문제가 부딪치고, 쓰레기와 담배꽁초가 부딪치고, 거리 이용객과 노숙자가 부딪치고, 상점과 노점상이 부딪친다. 인사동길은 더욱 어렵다. 너무도 많은 것들이 섞여있다. 이면도로도 없고 차가 다니면서도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희귀한 길이다. 그렇게 고급문화와 길거리 장터문화가 섞이는 데도 없다. 어른과 아이들이 섞이고 젊은 연인들과 가족들이 섞인다. 그렇게 복잡하면서도 외국인들이 꼭 찾는 동네다. 전통과 현대가 뒤섞여 있다. 인사동은 또 한 고개를 넘고 있는 것 같다. 고개 넘어 인사동에 어떤 미래가 있을까. 이제 본격 개장되고, 또 많은 것이 섞이면서 또 다른 문제,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문제를 또 다른 방식으로 풀어보고,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 봐야 하리라. 그렇게 인사동은 변하면서 또 변하지 않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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