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타일 인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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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외로움도 藥이다
[이 아침에] 외로움도 藥이다 장석주 < 시인·문학평론가 > 새벽은 고요를 탄금(彈琴)하는 시간이다. '아직 캄캄할 때 문밖을 나서 차가운 공기를 폐부 가득히 빨아들이니 인생을 참 살 만하다'는 마음이다. 벌써 12월이다. 12월엔 다들 마음이 허전해지는 모양이다. 사교 모임이 많고 찾는 전화도 늘어난다. 사교란 다른 취향과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다름이라는 코드 뒤에 숨은 종적 동질성을 확인하는 의전 행위다. 술과 음식과 음악이 넘치는 공간에서 타인들이 발산하는 유혹과 매력이라는 향기에 취한 채 이완을 즐기는 것，"고립상태에서 벗어나 사회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서핑을 하는 것"(울프 포샤르트)，그게 바로 사교다. 그러나 번잡한 사교생활 속에서 한 대중가요의 노랫말처럼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잃어버리거나，수많은 농담과 진실 속에 멀어져간" 솔개(참 자아)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외로움이라는 체내시계를 갖고 있다. 그 시계는 늘 째깍거리지만 특히나 멜랑콜리해지는 12월에 그 소리가 더욱 커진다. 쇼펜하워는 "외로움은 모든 위대한 정신의 운명"이라고 말했다지만 그건 고매한 철학자니까 하는 소리다. 엉겁결에 외톨박이의 운명을 떠안은 노총각·노처녀·은둔자들은 밤이면 혼자 해맑은 고현정 때문에 TV 드라마에 눈길을 고정한 채 튀긴 닭다리를 물고 캔맥주나 들이키는 거다. 맥주가 식도를 넘어갈 때 진저리를 치는 것은 맥주가 차기 때문이 아니라 뼈가 녹는 듯 처절하게 외로운 탓이다. 외로움이란 결핍이 그 원인이다. 따뜻한 말，유머가 넘치는 대화，미소，사회적 보호와 안전의 보장，스킨십，키스，섹스가 없을 때 우리는 외로운 거다(나는 통장잔고가 바닥일 때도 외로워진다). 외로운 이들은 멋진 사랑을 꿈꾼다. 그건 사람이 타인과의 관계망 안에서 제 삶의 의미를 찾는 존재，타인에게 종속된 존재라는 뜻이겠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내적 결핍을 안고 살기에 타인이 내게 주는 위로와 기쁨이 필요한 거고 사교는 빈 데 시린 데를 타인의 힘을 빌려 채우고 데우는 행위다. 그러나 짝이 있다고 외로움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감정과 생활을 공유하지 못할 때 부부관계는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외로움이라는 찬바람이 불어온다. 남남처럼 메마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한집에 사는 부부들이 많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외롭지 않을 수 있고 혼자가 아닐 때도 외로울 수가 있다. 그러니까 단지 외로움 때문에 결혼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선택이다. 마셜 맥루한이라는 미디어학자는 모든 문화와 문명의 형태를 외로움 때문에 만들어진 인공대체물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직장·취미·가족·종교조차도 외로움이라는 바다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이 살기 위해 찾는 섬이라는 거다. 외로움은 외롭지 않은 상태를 위해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드는 조건이다. 현대에 와서 싱글족이 증가하면서 외로움은 사치의 아우라를 갖게 되었다. 나는 구질구질한 결혼보다 화려한 싱글이 더 좋다는 말도 유행하지 않았던가. 외로운 것은 생각보다 나쁜 게 아니다. 외로움을 비생산적인 힘보다는 강하게 하는 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에 징징거리지 말고 그걸 멋지게 즐기는 법만 배우면 되는 거다. 잠을 충분히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햇빛을 충분히 받는 것，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더 많이 먹는 것，사려 깊은 이성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한가로이 산책하며 속 깊은 대화를 나눌 만한 동성친구를 갖는 것，좋아하는 책·음악·미술관·박물관·전시·DVD 등은 내가 갖고 있는 꽤 쓸모 있는 처방전이다. 외로운 사람은 그 외로움이란 속성을 통해 강하고 더 독립적인 인격을 갖출 수도 있고 혹은 융통성 없고 이기적인 인격，한마디로 성질 더러운 인간이 될 수도 있다. 외로움은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당신에게 외로움이 찾아올 때 너무 놀라지 마라. 외로움은 이러저러한 관계에서 쌓인 피로를 푸는 휴식，감정의 찌꺼기들을 씻어내는 정화소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올 겨울엔 외로움이라는 준마를 몰고 세상이라는 벌판을 신나게 달려 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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