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타일 인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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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화가' 이중섭의 생일은?
 1916년 4월 10일은 사실과 달리… 이중섭 수학한 일본 문화학원 학적부 조회하면 될 것 이중섭(李仲燮)은 우리 현대예술문화사에서 드물게 감동적인 신화로 남아 있다. 미인박명(美人薄命)이란 말처럼 불꽃같이 살다간 천재화가였던 점도 신화이고, 동족상잔의 사회혼란으로 천재에 걸맞은 사회적 대접을 누리지 못한 탓에 행적이 일부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점도 신화다. 신화는 본디 안개 같은 것. 이중섭의 신화에는 생일도 한몫 한다. 이중섭의 행각을 세상에 알린 최초 발단은 시인 고은의 ‘이중섭평전’이다. 그 뒤 이중섭의 삶과 예술을 다룬 단행본(오광수 ‘이중섭’, 전인권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 최석태 ‘이중섭평전’)과 화집 등이 잇달아 나왔는데 거기에 빠짐없이 1916년 4월 10일생으로 적혀 있다. 1973년에 처음 나온 ‘이중섭평전’에 그렇게 적혔기 때문이다. 여전히 열정적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김병기(金秉騏ㆍ1916~)는 이중섭과 초등학교 때 단짝 친구였고 일본 문화학원 동문이다. 그가 죽음의 병에 이르렀다는 소문을 듣고 적십자병원을 찾았다가 무연고 시체로 방치된 이중섭을 만났던 분이기도 하다. 이런 인연이 있었기에 고은 시인이 김 화백을 만나 죽마고우의 기억 속에 남은 이중섭 행적을 들은 것은 당연했다. 그걸 듣자면 증언자의 행적도 알아야 했을 터인데, 김 화백 생일이 바로 4월 10일이다. 김 화백이 한때 작업하던 서울 스튜디오가 내 집과 지척이라서 종종 만날 기회가 있었고, 그 뒤 서울이나 뉴욕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면서 한국 현대미술 전개의 흥미진진한 그의 체험담과 목격담을 즐겨 듣고 있다.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음은 해방 직후 북한에서 결성한 미술동맹의 서기장을 지냈고, 곧 이어 체제에 실망한 나머지 월남해서는 6ㆍ25전쟁 때 종군화가단 부단장을, 그리고 서울대 미대 교수를 지냈던 경력이 말해주고 있다. 경력도 경력이지만 90을 바라보는 연치(年齒)인데도 컴퓨터 같은 기억력을 갖고 있는 분이다. 미국에서는 까맣게 잊고 있던 것도 서울 땅에 당도하면 영화 필름이 돌아가듯이 술술 지난날이 기억난다는 것이다. 여름 즈음으로 기억할 뿐 지난 8월 말에 모처럼 서울 작업실에서 만나자마자 이중섭 생일을 바로잡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말문을 열었다. 김 화백은 유머가 탁월한 분이다. 이중섭 생일의 착오를 말하다가 대뜸 화제를 바꾸어 이미 세상이 그렇게 알고 있으니 오히려 자신의 생일을 음력으로 적는 것이 미술계를 돕는 일이 되겠다 한다. 당신의 음력 생일은 3월 8일. 나도 농담 삼아 충무공 이순신 생일과 같으니 그게 좋겠다고 맞장구쳤다. 임란 때 풍전등화 같던 명운(命運)의 나라를 구한 공덕에 깊이 감복하긴 해도 내 직업적 학구(學究)가 충무공의 생신까지 기억할 입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걸 기억하는 까닭이 있다. 그건 백수(白壽)로 타계하기 직전까지 내가 그 문하로 30년을 출입했던 권중휘(權重輝ㆍ1905~2003) 전 서울대 총장의 아호를 통해서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한사전 편찬으로 유명한 권 총장에게 아호 갖기를 권한 분이 있었다. 오래 생심(生心)을 하지 못함을 본 그 친구가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며 “생일이 충무공과 같으니 ‘한산(閑山)’이라 해라” 했다는 것이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하는 충무공 우국충정 시(詩)의 그 ‘한산’이다. 동경제대 출신으로 일제가 창씨개명을 서두르자 그 치욕을 피해 만주로 직장을 옮겼던 분이니 충무공에 대한 그의 존경심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영문학자 권 총장은 한국셰익스피어학회를 만든 셰익스피어 권위자이다. 그의 논설문 하나는 셰익스피어 생일 확인의 전말에 대해서다. 대문호의 생일이 교회등록부와 비문 사이에 3일의 차이가 난다는 것. 대문호에 대한 신상이고보니 세계 영문 학계에서는 생일 규명이 지대한 관심사가 되고도 남는 모양이다. 자신의 생일을 ‘도적 맞은’ 뒤로 김 화백도 이중섭의 생일이 궁금했다. 그래서 함께 월남한 이중섭 조카에게 물어보아도 여름 즈음으로 기억할 뿐 모른다는 것이다. 1951년 초에 서귀포에 정착한 피란민 이중섭과 가까이 있기 위해 뒤따라 부산에서 제주도로 왔을 정도로 가까운 친척인데도 이중섭의 생일을 모른다 했는데, 그럴 만한 까닭이 있겠다고 짐작은 간다. 절대가난 탓에 생일상을 차릴 형편도 아니었을 것이고, 게다가 부모가 살아계시면 생일을 챙기지 않는 등 생일맞이 문화에서 금기가 적잖았던 우리 전래 풍습 탓일 수도 있다. 그래서 김 화백은 언젠가 일본에 있는 중섭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ㆍ 한국이름 李南德) 여사를 만날 기회가 있으면 답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다. 내 생각에는 학적부를 찾아보는 것이 지름길이지 싶다. 북한의 호적과 학적부는 찾을 길 없으니 기록 잘하기로 이름난 일본 문화학원에다 대학시절 학적부를 조회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 대소 이중섭 연구를 감당했던 많은 연구자 가운데 아무도 여태껏 대학이란 말을 붙이지 않고 처음 교명(校名)을 고수하고 있는 문화학원에 가서 그의 학적부를 점검하지 않았다는 점도 이중섭 미스터리에 들 만하다. 조선의 망국 안타까워해 이중섭은 노래를 잘 불렀다. 테너 목소리로 쩌렁쩌렁 불렀다는 것이 역시 김병기의 기억이다. 그가 잘 부르던 노래는 둘인데, 독일민요 ‘소나무’는 따라 배운 적이 있고, 이광수 작시 ‘낙화암’은 배우지 못했다 한다. 우리 가곡 ‘낙화암’은 인기가곡이라 지금도 종종 들을 수 있다. 방송을 타는 그 가곡(일명 ‘사비수’)은 이광수 작사, 김대현(金大賢ㆍ1917~1985) 작곡이다. 1942년에 제국고등음악학교 작곡과를 졸업한 일본 유학생 출신 김대현을 김병기가 해방 후에 만났던 적이 있다 하니 이중섭도 그 작곡가를 만났을지 모른다. 여기서 가질 만한 궁금증은 이중섭이 문화학원을 다니던 시절인 1930년대 말의 스무살 전후 김대현이 이미 ‘낙화암’을 작곡했단 말인가. 음악전공자는 재질을 타고나는 법. 모차르트, 멘델스존, 로시니 등 10대 때 이미 작곡에 진경을 보인 경우가 허다했다는 세계 음악사의 연장으로 김대현도 그랬을지 모른다. 그런데 ‘석굴암’ ‘내 마음에 강물’ 같은 이 시대 애창가곡 작곡으로 유명한 이수인(李秀仁ㆍ1938~)의 증언은 다르다. 일제 때의 ‘낙화암’은 이광수 작사에다 당시 일본에서 대유행했던 ‘낮의 꿈’ 노래 곡을 따붙인 것이라 한다. 낮의 꿈 작곡은 야마다 다다시(梁田貞), 작사는 다카야스 겟코(高安月郊)인데, ‘장미꽃이 피어 그가 가린 곳에 누워/ 노래를 베개로 올려다보면/ 노래의 마음이 꽃에 들어가 피어요, 꽃잎 피어요 피어요/ 피고 피어서 노래가 돼요’가 그 가사다. 이광수 작시에 일본 곡조를 붙인 가요는 당시 ‘낙화암 만경창파’라 했다. 가사가 말해주듯이 백제의 패망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사비수 나리는 물에 석양에 비낀제/ 버들꽃 나리는데 낙화암에란다/ 모르는 아이들은 피리만 불건만 맘있는 나그네의 창자를 끊노라/ 낙화암 낙화암 왜 말이 없느냐’는 3절 노래 가운데 이미 1절 가사에서 그 한탄이 절절하다. 최석태 미술평론가가 ‘이중섭평전’에 적었듯이,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이중섭은 조선의 망국을 거듭 안타까워했지 싶다. 이중섭에게 애창곡을 배울 정도로 그의 노래를 듣기 좋아했을 망정 그가 일본인 동기생 앞에서도 부르는 것을 김병기는 내심 못마땅해 했다. 일본 학생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말 가사의 노래로 식민지 사람의 한을 풀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노래가 일본 곡조였음을 이중섭도 알았을까. 알고도 가사의 뜻에 끌려서 그렇게 불렀단 말인가. 이래나 저래나 그의 열혈 민족혼은 메아리 없는 ‘낮의 꿈’ 곧 백일몽(白日夢)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때는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나라 잃은 예술가의 격정적 비감(悲感)을 만나는 우리에겐 이중섭이 노래하던 낙화암의 말뜻이 크게 울려온다. 역시 이중섭은 신화이다. * 이 글은 이중섭과 함께 동인활동을 했던 서양화가 장욱진의 평전을 적었던 필자가 지난 9월 15일, 조선일보 주최 ‘서귀포와 이중섭’ 세미나에 방청객으로 참석한 자리에서 미술전문가들에게 개인적으로 배포했던 내용이다. 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주간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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