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타일 인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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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장이 될 것인가, 도예가가 될 것인가
 사기장이 될 것인가, 도예가가 될 것인가 우리의 옛 사기장(일본식 표현으로 도공이라고도 한다)들은 사회적 신분의 차별에서도 창작의 기쁨을 위해 오직 물레만이 삶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왔다. 장인 정신의 결정체요, 동시에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자랑스러운 우리 한 민족만의 아름다움이 바로 전승도예인 것이다. 조상 때부터 내려온 그릇쟁이라는 천직을 한마디 불평도 없이 도자기를 빚어온 사람들. 예술을 예술인 줄 모르고 무심한 경지에서 빚어낸 자연미, 바로 이것이 전승도예에 면면이 흘러온 정신인 것이다. 전승도예는 한국인의 마음으로 만들어지고 한국인의 정서를 가득 담은 예술이기에 전승도예의 내면에는 한국인의 얼이 스며져 있고 보이지 않는 따뜻한 숨결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숨결과 얼은 전승도예의 앞날에 끊이지 않고 흘러가야 할 것이다. 전승도예의 역사 우리의 조상들은 신석기 시대부터 도기(토기)를 만들어 일상생활에 사용했다. 삼국시대에는 굳센 기상을 지닌 '고구려도기', 우아한 '백제도기', 독특한 개성을 지닌 '신라도기' 등 각기 고유의 도기문화를 정립했다. 고려시대에는 도자기의 원류임을 자처하는 중국인들도 감탄하는 비색청자가 나왔다. 특히 고려청자는 중국청자의 전통적인 완벽주의나 빈틈없이 균일한 유색과는 달리 우리민족 특유의 낙천주의와 자연주의가 스며있어 인공의 냄새가 덜한 자연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어 고려의 멸망과 더불어 청자기법을 일부 계승한 분청사기가 나왔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조선백자가 꽃을 찬란히 피웠다. 분청사기는 분을 바른 청자라는 뜻으로 고려청자의 상감기법과 인화기법을 병행하여 대담하게 추상화한 것이다. 우리민족의 창조적인 정신을 잘 표현한 명품이라 하겠다. 그러나 분청은 임진왜란(일본은 찻사발 전쟁이라고도 부름) 30∼40년 전 백자를 지향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우리 민족에게서 잊혀졌다. 백자는 고려시대에도 존속하였으나 그 수가 많지 않았으며, 조선백자와는 분명히 맥을 달리한다(고려백자를 일명 백고려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순결과 흰옷을 사랑하는 우리 민족성을 반영이라도 하듯 순백색을 띤 백자가 등장한다. 조선시대 백자의 특징은 색깔이다. 초기는 순백색, 중기는 유백색, 후기는 관에 의해 주도된 관요가 토착화된 분원시대인데, 담청색이 주류라고 할 수 있다. 자태는 초기에는 의젓하고 당당하며 중기는 우아한 멋, 말기 분원시대에는 그야말로 기발하다(일본사람이 한국 전승도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 30년 전부터 최북단 회령마저도 백자가 완성되어 전 국토가 백자 전용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36년 간의 일본 제국주의 지배는 우리민족 문화의 수난기였다. 일제치하에서 일본인은 우리의 도자기를 좋아하면서도 전승도예의 맥을 끊어 놓았다. 우리나라의 전승도예는 민족혼과 오천년 역사의 숨결 그 자체였으며 이러한 사실이 일본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전승도예와 민족정신 청자에 대해 어느 시인은 "높고 푸른 9월의 하늘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청자를 만들 수 있었다"고 노래했다. 고려청자는 모든 색이 푸른 빛깔이어서 '청정무구'를 느끼게 한다. 푸르름은 곧 맑음이요, 맑음은 불교로 말하자면 '공(空)'을 뜻한다(고려시대는 곧 불교문화의 시대이다). 즉 우리의 사기장들은 공(空)을 통해 불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려 했던 것이다. 공(空)은 색(色)이었기 때문이다. 청색은 바로 무상이고, 허무다. 현세를 떠나 유구한 정신세계를 통해 불국토를 염원하는 고려인의 마음, 이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중국인들이 '고려비색'이라고 부르는 청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청자가 '완성의 미'라면 분청은 '미완의 멋'이다. 청자가 비단옷이라면 분청은 수수한 삼베 모시옷이다. 청자에 청주가 제격이라면 분청에는 막걸리가 제격이다. 청자가 귀족적이라면 분청은 서민적이다. 우리는 분청을 통해 우리민족의 자유로운 기질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분청을 통해 획일화를 거부하고 추상적 창조성을 추구하는 우리민족의 예술감각을 느낀다. 백자는 모든 것을 다 포용하듯 있어도 없는 듯하지만 없으면 어딘지 허무감을 느끼게 한다. 삼대가 멸하는 형극의 칼날 앞에서도 선비로서 가야 될 길이 아니라면 가지 않는 청빈한 선비정신 그리고 순수가 아닌 것은 거부하는 우리민족의 백의정신, 그저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정신, 티끌만한 죄도 범하지 않으리라는 정신 등이 백자에 어려있다. 전승도예의 기법 여기에 말하는 기법은 전승도예의 총괄적인 기법 즉 현대도예와 구분되는 기법을 말한다. 먼저 전승 도예를 빚을 때 가스 가마인가, 장작 가마인가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가스 가마를 택하냐 장작가마를 택하냐 보다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필자의 가마는 장작 가마이다. 그러므로 해서 장작가마에 대한 기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장작 가마를 고집하는 이유는 장작 가마만이 전승도예의 자연적 요변(가마 안에서 장작불에 의해 자연히 발색되는 도예의 표현기법)에 의한 은은한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장작가마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이유는 전승도예가 불의 예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자기의 색깔을 결정하는 것은 불의 온도다. 불을 지피는 장작은 화가로 말하면 붓이요, 물감이다. 화가가 붓을 들고서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 나가듯이 사기장들은 장작개비라는 붓을 하나 한 던짐으로써 도자기라는 그림을 그려 나간다. 이처럼 사기장이 하나 장작개비를 던지는 순간이 바로 예술을 하는 순간이며 명품을 만드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엄습해 오는 졸음을 떨쳐버리며 명품 하나를 건지기 위해 불을 넣었다 뺐다하는 행위가 전승도예의 구도적 자세인 것이다. 가까운 일본의 예로 보아도 가스 가마를 사용하는 도예가는 참된 도예가로 대접받는 경우가 드물다. 미국의 서부지방에서는 장작가마로 구운 도예작품이 현대적 기법으로 구운 도예작품보다 월등히 값이 비싸다. 그러나 장작가마로만 구웠다 해서 좋은 도자기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가스 가마로도 훌륭한 작품을 빚는 작가가 많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 둔다. 단지 필자의 단견으로는 전승기법으로 되지 않을 때만 과학의 힘을 빌려야 참된 전승 도예가가 된다는 뜻이다. 또한 도자기는 자연과 일치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전승도예 전승도예가 옛 것의 모방과 재현에만 그친다면 그것은 예술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나친 상업주의로서의 전승도예가 지금 만연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먼저 지금의 사기장 중에는 자기 작품을 ‘물건’이라고 부르는 작가가 많다. 그런 사기장들은 사기장으로서 자부심이 없다는 판단이다. 물론 자만심을 가지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자부심 없이 도자기 작업에 임할 때는 명품을 만들기가 힘들다. 또한 자부심 없는 사기장의 행동은 일부 사람에게 전승도예를 기능으로만 보이게끔 한다. 전승도예는 우리 조상들을 통해 오늘날에 전해 내려오는 전승기법을 통하여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새로운 도예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소명을 가지고 있다. 동양이 도자기 공예라면 서양은 유리 공예였다. 서양의 유리공예는 엄연히 상품(商品)과 작품이 구별된 채 발전돼 왔다. 우리의 전승도예는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 우리의 전승도예는 옛 선배 사기장 작품의 모방에만 몰두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퇴보를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 전승도예를 통해 현대 도예를 재평가하여 배워야 할 것은 과감히 배워야 할 것이다. 전승도예의 발전적 계승을 통해 현대공예를 배워야 한다. 온고지신이라고 하지 않는가. 요새는 현대공예를 배워 그 관점으로 전승도예를 대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앞뒤가 바뀐 것이다. 즉, 현대공예의 재발견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전승도예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필자는 이미지 전달에만 지나치게 매달리는 현대 도예를 도예라 부르지 말고 '도자기를 이용한 조각'이라고 불러 주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림은 보는 예술이요. 도예는 사용(用의 개념)함으로서 맛을 느끼는 예술이다. 지금의 우리나라 대학의 도예과에서는 현대 도예에 치중한다. 국적 없는 교육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전승도예의 깊은 맛을 무시하면 안될 것이다. 미국 현대 도예의 대부 격인 버나르도 리치도 가장 현대적인 공예의 예술적 표현을 한 작품은 유감스럽게도 현대의 작품이 아니라 500년 조선의 사기장이 빚은 도자기라고 밝힌 바 있다. 전승 도예가인 사기장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사기장이 도자기를 잘 만들면 실력좋은 사기장은 될 수 있으나, 도자기에 대한 역사나 이론을 모른다면 도예가는 될 수 없을 것이다. 현대는 사기장의 기술과 도자기에 대한 이론과 역사를 겸비한 도예가가 필요한 세상이라 느껴진다. 도자기의 종주국인 우리나라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 보물 중 가장 많은 보물이 도자기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서양을 대표하는 예술이라면 우리의 대표적인 예술은 분명 전승 도자기 일 것이다 오마이뉴스 - 신한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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