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模倣)은 아류(亞流)일뿐이다.

모방(模倣)은 아류(亞流)일뿐이다. [현대도예정착을 위한 제언에서..]

- [현대공예]의 한 부류인 지금의 [현대도예]는 무엇인가? 오늘날 도예는 창작의 일차적 목적을 조형성과 개성에 두고 순수미술의 그것처럼 예술성(藝術性)을 인정받고자 한다.

물레성형을 떠나 흙과 유약, 소성에 의한 형태 탐구와 오브제(Object)도예라고 말하는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미술의 흐름속에 도예를 삽입시켜 탈(脫)장르의 영역으로 해석하는 것을 본다.
소위 도조(陶彫)나 조형작업(造形作業)이라고 불리는 이 같은 경향은 현대미술(現代美術)의 양식분류에 있어서는 세계적 추세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우리의 경우는 너무 지나친 느낌이다.

미국의 현대도예 경우, 이러한 경향은 이미 '5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60년초부터 피터 볼커스에 의한 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 도조(陶彫)나 미국 현대도예가들에 의한 팝아트 경향의 '흙 오브제'(Clay Object) 작품들, 그리고 도자기법에 의한 극사실주의 표현양식 등이 오늘날 한국 현대도예(現代陶藝)의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여기서 우리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한국적 현대미술(現代美術)사조(思潮)와 연결된 자발적인 도예운동이나 조형작업에 있어서 독창적 개념의 부족이다.

다시 말해, 미국 화단(畵壇)의 경우 액션 페인팅과 연결된 '60년대 추상표현주의 도예가들은 표현의 자유로움과 함께 흙, 유약, 불에 의한 독특한 모더니즘 도예작품이 제작되면서 나름대로 당위성(當爲性)을 갖고 그들의 현대 미술사조(思潮)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이에 반해 우리에게는 한국적 모더니즘 미학이나 독창적 미술양식의 자생적 활동도 없이 대학 일부세력이 주축이 되어 서구에 비해 30여년이나 뒤늦게 외형적으로만 비슷한 조형의 재현작업이 이루어지더니 지금은 한국 현대도예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서구 표현양식의 일방적 모방이나 무비판적 시대 조류의 수용은 우리에게는 비생산적 유희이며 문화의 사치이다. 모방(模倣)은 창작의 세계에서는 밀려날 수밖에 없는 아류(亞流)일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현대도예(現代陶藝)는 어떠한가? 아마도 이러한 미국의 현대미술(現代美術)과 맥을 같이하거나 이보다 더 파격적(破格的)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공예(工藝)의 현대성(現代性)도 이루지 못한 형식주의적 현대도예(現代陶藝)가 현대미술(現代美術)의 주류가 되었던가?

결과적으로 이제 도예가들은 "도예"라는 말 대신 도(陶)를 생략한 흙작업(Clay Work), 또는 조형작업(陶彫)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도자의 전통이 없으므로 미국의 예술을 보면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에 특징을 볼 수 있다. 조각적 경향에 의지한 점토의 속성만으로 도자예술의 근간으로 삼는 겨우 100년의 도예역사를 가진 이러한 서구(西歐)중심의 조류속에서..."(도자예술의 새로운 시각, 미진사, 205p 부분 요약)

또, 이를 모방(模倣)하는 일부 대학중심의 도예교육의 허구속에서 한국 현대도예의 방향성(方向性)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語不成說)이다.

또 한가지 우리의 경우를 보면 화랑가(인사동과 청담동 등)에서 앵포르멜이나 "추상 표현주의의 형식의 조형도자"는 보이는데 "미니멀 아트에 관한 도자"가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도공의 꿈, 전통(조선백자,청자,분청 등)의 이해를 통한 자신의 흙과 불의 씨름보다는 흙과 유약을 사다가 속파기나 타래쌓기의 취미적 도예가들이 해온 손쉬운 방법이 되고 있는 탓이다.

사회 현실적 요구와 삶에 기반을 두는 건전한 공예관(工藝觀)과 유리된 채 자체 분화를 하면서 예술이 가지는 사회성과 형상이 주는 의미가 지나칠 정도로 자족적이고 편향적(偏向的)이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미술계 과거의 한가지 현상으로 20세기 이후 서구 모더니스트들이 추구하던 <미(美)를 위한 미(美)>, <예술을 위한 예술>로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에도 지속성을 갖고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전시장(展示場)에 놓인 오늘의 도예(陶藝)는 무엇이 목적인가?

현대미술(現代美術)이 순간적 아이디어 히트상품처럼 범람하는 시대이지만 이와 같은 작업(作業)으로는 한국현대도예의 자생적 미학(美學)과 독창적 개념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단지 그럴듯한 형식의 작업으로 아이디어처럼 한번 해보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한국 현대도예(現代陶藝)는 그럴듯한 논리나 양식의 다양화보다 [도예(陶藝)만이 갖는 독특한 예술세계]를 탐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저자: 이재삼, [도벽@환경도예] 저자후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