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전] 밝은 그림만 찾는 세상

“어두운 그림은 싫어요.”

이사를 하거나 생활의 여유가 조금 나아져 그림을 찾는 요즘 사람들 취향의 한 단면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대체로 밝은 색상을 선호하게 된다. 살아온 날에 대한 피로감 때문일까? 어두운 그림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제 젊은 층마저도 밝은 색 그림을 선호한다. 조로(早老) 현상 탓일까?

나는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일 때 조각가 권진규 선생의 흉상(胸像) 테라코타 한 점을 빌려와 집에서 보관하며 감상한 적이 있었다. 정중동(靜中動)의 절제미가 함축되어 있는 권 선생 조각은 마치 무덤에서 시체를 파헤쳐 꺼내어 놓은 것처럼 전신에 전율을 느끼게 하는 냉기가 감도는 작품이다. 그 당시 단칸방에 살았던 나는 늦은 밤 무심코 방에 들어갔다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품의 내용이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소스라칠 정도로 ‘소름이 끼쳤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나는 폐를 절단하는 대수술을 하게 되었다. 회복 과정에서 여러 번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오는 처절한 과정 끝에 가까스로 퇴원을 할 수 있었다. 그 즈음 나는 권 선생 조각을 다시금 보게 되었는데 또 한 번 놀랐다. 그 무섭던 조각이 내게 너무나도 절절하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의 시각에 변화가 온 것이다. 그것은 나의 고통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의 표정처럼 내게 한없는 위안을 안겨주는 느낌이었다. 죽음을 체험하고 나서야 권 선생 흉상 작품에서 해탈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 이전 나의 삶은 표피만 훑고 지나가는, 본질에 다가가지 못한 안이하고 세속에 집착한 얇은 수준이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에 따라서는 젊은 시절에 제작한 구작(舊作)의 가격이 훨씬 높은 경우가 외국에는 많다. 미술 작품을 생활화하는 유럽에서는 피카소의 청색시대 작품이 가장 비싸다. 색채도 음울하고, 담긴 내용 또한 비극적이며, 젊은 날의 고뇌가 서린 어두운 내용이다. 이렇듯 위대한 예술품에는 반드시 짙은 인생사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림을 장식품처럼 수집하는 요즘의 세태는 고뇌가 서린 어두운 색채의 그림들을 회피한다. 분양받은 아파트에 어두운 그림을 놓으면 침울해진다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예술품은 거실과 방의 집기가 아니지 않은가? 생각해 보라. 각이 반듯하고 유리창 벽면이 많은 요즘의 밝고 넓은 아파트 구조에 그림마저 밝은 색채로 단조롭게 장식한다면 인간의 정서가 머무를 장소가 어디 있겠는가.

이제 막 무서운 도약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은 예술을 대하는 자세가 우리보단 훨씬 본질적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대표적 서양화가이며 가장 비싼 가격의 경신을 거듭하고 있는 장샤오강. 그의 그림은 눈물을 머금고 있는 사람의 두상이 주된 소재이다. 색채 또한 어두운 무채색에 가깝다. 이런 그림을 선호하는 중국인들이 우리보다는 훨씬 인생을 본질적으로 이해하며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이 그림을 지금의 우리나라 정서로 본다면 우는 표정이어서 ‘방정맞은 그림’이라고 기피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림을 수용하는 자세가 본궤도를 벗어나서 한쪽으로 잘못 치우친 것 같다. 더구나 나라의 주축이 될 젊은 세대들의 취향이 고뇌가 없는 밝은 쪽 그림만을 선호하는 취향인 것은 안타깝다. 21세기는 컴퓨터의 발달로 인간의 정서가 점점 메말라 가고 있기 때문에 예술의 영역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다양성의 지구촌 시대를 살며 정상적인 인간성 회복을 위해 이런 나의 염려가 기우에 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신옥진·부산 공간화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