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패션산업을 살리려면… 젊은 기술자 기근현상 …

"伊처럼 국가가 나서라"..

얼마 전 뉴스에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65%가 “현 상황이 지속되면 3년 이상 못 버틴다”는 내용이 나온 것을 봤다.
여러 분야의 현장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으로 3~5년이면 기술자 기근현상이 올 것이며 많은 시장이 중국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힘든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년 넘게 의상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나도 1980년대 초와 2000년대 사이에 상당한 변화가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미싱업계에도 우리 용어로 ‘중간제자’나 ‘윗제자’가 없어진 지 오래며 맨 ‘막내제자’는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젊은 기술자가 없으니 신기술 공부나 도입은 요원하고 이제 곧 정년이 가까워지는 고령 기술자들이 70년대와 80년대에 익혔던 기술로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니 우리 산업의 발전과 국제적 경쟁력은 계속 뒤처질 수밖에 없다.

패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패션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사업이며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탈리아나 프랑스를 보라. 패션산업으로 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가. 이탈리아가 오늘날 패션의 메카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것은 국민의 의식과 정부가 그 산업을 얼마나 전략적으로 육성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1960년대 패션산업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직물은 세계 3위, 의류수출은 세계 4위라는 위상을 가졌던 우리나라 패션산업은 80년대 후반 인건비 상승과 기술인력의 이탈, 중국 등 후발 경쟁국의 도약으로 점점 세계시장에서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이탈리아는 우리가 겪은 이런 경험을 이미 10~20여년 전에 겪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그 위기상황을 심각하게 느끼고 해결방안을 적극 모색했다. 산업계와 지방정부가 합심하여 문화와 산업이 동시 공존할 수 있는 섬유박물관을 건립, 과거와 현재·미래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도록 했다. 학교, 직업훈련, 연구개발, 기술이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시설 인프라를 구축했으며 연구학원도시를 세웠다. 수직적 일괄생산 공정을 갖추고 고전적이고 전통적 제품의 우수성을 살려 최고의 품질을 지향했다.

공정전문 기업과 자금력을 가진 기업, 그리고 마케팅 능력을 가진 회사들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제휴, 협력, 상호보완하는 기업 간 협력체제로 산업이 더욱 고도로 전문화되었고, 소비자의 급변하는 욕구에 신속 대응할 수 있는 기동력이 생겨 유행 산업의 특성에 효율적으로 부응했다.

국가 차원의 마케팅, 홍보 지원으로 밀라노를 중심으로 세계적 컬렉션, 전시회, 이벤트 등이 활성화되었고, 유명 독자 브랜드의 집중 육성 등으로 80년대 들어 내수 중심에서 해외수출 중심으로 그 위상이 변화되었다. 자신의 지역특화상품을 발전시키려는 지방정부의 중소기업 육성 및 지원 노력도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자국 섬유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뿌리가 되었다. 전통을 계승한 장인정신과 창조적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한 이탈리아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실제 고급 패션은 세계 1위의 패션 수출국가로 거듭났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손끝 맛을 지닌 나라이며, 그 매운 손끝 맛(핸드 메이드)으로 경제를 일으켜온 나라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어렵더라도 우리 기술을 전승·발전시킬 수 있는 산업현장으로 뛰어들고, 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패션에 종사하는 중소기업을 정책적·전략적으로 육성하는 데 지원을 해준다면 우리 패션산업도 고품질,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유명 영화제 시상식장에 앞다투어 외국 유명 브랜드의 드레스를 입고 나서지 말고 우리 전통의 멋을 살린 드레스를 입을 줄 아는 유명인의 의식이 변화된다면 일반 대중도 우리 것의 소중함을 더욱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재키룩’ ‘헵번룩’이 번져가듯이 우리도 ‘명성황후룩’을 세계에 유행시킬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 이영주(디자이너)
2003/10/16 조선일보 기고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