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조형물 설치 제도와 관행의 문제

환경조형물 설치 제도와 관행의 문제
◆◆◆◆◆환경조형물 설치 제도와 관행의 문제◆◆◆◆◆

짧은 글에서 필자는 1%법의 취지와 관련하여 환경조형물이 갖추어야 할 도덕적 혹은 문화

적 원칙에 대한 원론을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지 않다. 다만 비교적 조각에 대한 글

을 많이 썼던 까닭에 그 동안 몇 차례 관여했던 환경조형물 심사과정에서 느꼈던 문제점들

을 경험적으로 진술함으로써 1%법의 운용과 연관된 정책입안자나 혹은 실무자 더 나아가

환경조형물에 관심을 가진 작가나 그 밖의 관계자들에게 이 글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으

면한다.

먼저 정부 부처의 한 산하단체가 조각공원을 세울 목적으로 조직한 운영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받고 나가보니 필자도 잘 알고 있는 조각가 한 분이 운영위원으로 나와 있었다. 물론

이 단체의 고위간부들로서는 환경조각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무하므로 조각가를 운영위

원으로 위촉할 경우 전문적이면서 기술적인 자문을 기대할 수 있고, 이 분 또한 그런 요청

에 부응하여 아주 상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요목조목 유효한 조언과 대안까지 제시하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이 운영위원회가 심사까지 겸했다는 것에서 드러나

기 시작했는데 전체 구성원의 70%가 이 단체의 고위간부이고 이른바 전문가를 대표한다는

사람은 고작 세 명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한 분은 환경조형물과는 관련 없는 작가로서 이

위원회와 상관없는 위원회의 위원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단체와 연관된 인사였다. 결국

미술이론가들이 지적했듯이 심의(심사)기구의 조직이 실질적인 전문가의 전문성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무리 개방적이고 공정한

논의과정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작품의 결정과정에서 다른 위원과 마찬가지로 필자도 한 표

의 투표권만 행사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결과가 엉뚱한 방향으로 결

정되었을 때 내가 과연 전문가를 대표할 수 있었던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게다가 운

영위원으로 참가했던 그 작가는 어느새 작품을 응모한 작가가 되어 있었으며, 비록 심사과

정에서 위원을 사퇴했다 하더라도 공정성은 이미 손상을 당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담

합이나 뒷거래 등 외부에서 위촉한 위원들에게 전적으로 심의와 심사를 맡길 경우 우려되

는 여러 문제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위원의 구성을 자기 단체 중심으로 짰다고 할지라도

다수결로 작품을 선정하는 경우 이 다수를 차지하는 비전문가들의 취향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은 뻔한 이치이므로 이 경우 외부에서 위촉한 이른바 전문가는 공정성, 전문성을 위장한

들러리로 전락할 한계가 농후하다.

두 번째의 경험도 마찬가지였는데, 우리 나라의 많은 공공주택을 건설하는 한 공기업이 지

방에 건설한 대단지 주거공간을 장식할 작품을 선정하는 심사위원도 외부 인사는 세 명밖

에 없고 나머지는 전부 그 회사의 임원들로 구성돼 있었다. 심사과정에서 새삼 확인한 사

실은 1%법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으며, 한 임원은 1%법의 무용론까지

거론할 정도로 법적용에 대한 불신을 토로했다. 즉 적은 평수의 서민들이 주거할 공간에

환경조형물을 세우는 것은 결국 분양가격만 올리는 것이지 이 주민들에게 무슨 문화적 혜

택이 가겠는가는 이의를 제기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지나치게 경제주의에 바탕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지레 무시해버릴 위험이 있는 발상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어쨌든 1%법이 장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적용될 경우 예

상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경우는 법적용의 문제에 해당

할 것이다.

세 번째 필자가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신문지상에 광고를 게재하여

응모작들을 접수하여 심사를 통해 작품을 선정하는 방식의 문제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

으로 공정하고 바람직하며 합리적으로 비쳐질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환경조각은 공공예술품이란 인식을 갖추지 못한 많은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공적인 공간이 아니라 전시장에 놓여야 할 예술품인데도

단순히 규모만 확대하여 버젓이 응모되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환경조형물 수주경험이 있

는 작가가 설립한 회사의 실적이 점수에 반영됨으로써 비슷비슷한 작품이 선정될 확률은

그만큼 높고, 작품의 공공성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지

방에서 이루어지는 환경조각 설치의 경우 지역작가 보호육성이란 명분으로 타지역 작가들

의 응모가 원천적으로 봉쇄된다는 것에 있었다. 결국 이 논리는 작품의 질적 수준보다 해

당 지역작가의 이권을 수호하는 '돈 되는 사업' 외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여기에서 작가

의 양식문제가 드러난다.

그래서 서울 시내를 걷다보면 한 작가에 의해 제작된 비슷한 형태의 작품이 여기저기서 출

몰하며, 어떤 경우 도저히 환경조형물로 보기에도 민망한 작품이 버젓이 공공 공간을 점유

하여 오히려 도시공간을 시각공해의 혼란스러움으로 치장해 놓은 사례를 흔히 목격하게 되

는 것이다. 여기에 건축주의 금전적 이해관계까지 결부되면 환경조형물은 차라리 없는 것

보다 못한 결과를 낳게 되니, 지금 당장 시내 중심가만 나가보더라도 형식적인 준공검사를

위해 옹색하게 구색만 갖춰놓은 환경 쓰레기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