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들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들

Ⅰ. 머리말

공예가 정체현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제 공예는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힘이 자신에겐 없어 보인다. 따라서 공예는 내부적인 요인보다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그 추동력을 얻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금세기 중후반부터 모든 조형의 질서는 주로 회화와 디자인이 주도하면서 공예는 상수가 아니라 변수일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세기의 첫 해인 지난 2001년 한 해도 공예의 주된 이슈는 그 내부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으며 외부적인 것이었다. 즉 공예창작을 둘러싼 미학, 비평적인 문제제기나 전망보다는 공예의 외피적인 것이나 외부의 이슈들에 함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매체에 의한 대안모색이나, 혹은 관광 및 산업정책과 이벤트 등에 편승한 공예진흥의 모색을 들 수 있다.
역시 이러한 지적은 공예가 처한 현실이 그만큼 내부적인 에너지만으로 오늘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미술전체가 겪고 있는 보편적 현상이지만, 역사적 배경을 감안하면 공예에 가해진 현실적 고충은 훨씬 더 가혹하다. 그러나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고유의 조건들을 시대와 사회에 환원하고, 아울러 밖으로부터 많은 동력과 촉진제를 수혈받아 양적인 성장과 질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디지털 혁명은 공예에 커다란 자극제이자 촉진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매체 등에 의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지만, 또 고도화되고 스피디한 정보화 시대의 딜레마를 보완해 줄 수 있는 명제를 담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예는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받는다. 아울러 지역의 관광이나 산업과 연계한 다양한 시도들이 공예에 적지 않은 생산적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Ⅱ. 사이버 세계와 공예

디지털 환경과 시스템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은 공예에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부정적인 것은 사회적인 관심이 지나치게 매체 혹은 수단만을 중시하며 속도만을 강조하는 가치관이 지배하게 되며, 따라서 전통적이고 느린 혹은 수공적인 부문에 부당한 소외가 고착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점에서 오늘날 우리의 사회적인 권력이 조화롭게 분배되지 않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반면 디지털 혹은 사이버의 사회적 권력집중에 의한 반작용이 거대한 이야기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사회 여러 각도에서 부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숨가쁘게 고도로 급성장 중인 정보화 환경의 해독은 대부분 정신적, 정서적인 장애로 나타나고 있다. 공해와 오염으로 점철된 과거의 산업화가 주로 물질적이고 신체적인 해독으로 주어진 것과는 아주 다르다. 직접적인 폐해는 두드러지게 목격되고 있지 않지만 그 치유는 정신적, 정서적인 측면에서 많이 요구되고 있다. 회화에서 그리기로 복귀하는 경향이나 수공적인 것이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고 강조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 근거한다. 이런 점에서 공예의 수공적인 측면은 예술성과 상업성이라는 종래의 가치만이 아니라 교육적, 치료적 가치를 새롭게 담보하게 되는 것이다. 공예계에서 바로 이러한 문제를 크게 부각시킨 담론은 아직 없지만 머지 않아 중요한 화두로 등장할 가능성은 분명해 보인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멈춤'이라는 주제를 설정하고 있는 데서 공예의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디지털 혁명은 구체적으로 인터넷의 보급과 보편화에서 드러난다. 사회 각 분야가 다 그렇지만 인터넷의 영향은 미술계에도 적지 않다. 여러 방면에서 변화가 있지만 인터넷의 보편화는 곧 미술의 공간과 시장에 있어 대안적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그리하여 인터넷 상에는 기존의 미술관이나 갤러리들에서 온라인 전람회를 병행하기도 하는가 하면, 완전히 가상공간 속에서만 전람회를 개최하는 인터넷전용 갤러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인터넷 미술의 많은 시도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지만, 실상 만족스런 성과가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아무래도 미술은 이미지를 위한 대용량의 데이터베이스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기술적인 문제와 콘텐츠가 지나치게 고급화되어 있어 아직 대중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예분야의 경우는 회화나 조각보다는 훨씬 유리한 입장인 것 같다. 우선 일상생활에서의 필요와 대중적 요구에 직면하여 다양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격면에서 인터넷 이용자들의 요구수준을 만족시킬 수 있으며, 시스템화와 일정한 규격화가 가능하여 디자인상의 통일성만이 아니라 명실공히 산업환경에 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의 보급은 공예계에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최근 2, 3년 사이 공예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바로 사이버공간의 적극적인 활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기존의 화랑이나 미술관에 의존하기 어려운 장르상의 실정을 감안할 때 가상세계의 도래는 공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새로운 기원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공예분야에서 작가별로 혹은 공방별로 사이버전시와 쇼핑몰 활동을 하고 있는 사례는 정확하게 집계가 어려울 정도로 많다. 물론 공예의 모든 것이 고루 소화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로 생활소품 공예나 저가의 장신구 등의 품목을 중심으로 일정한 에디션을 가지고 있는 대상들이 활기를 띠고 있다. 물론 아직 오프라인 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비해 미미한 실정이지만, 앞으로 그 신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인다. 적극적으로 아이템 개발이 이루어질 때, 윌리암 모리스 등이 꿈꾸어 온 미술공예의 부흥이 실현될 수 있는 하나의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 공예작품들이 하나의 문화와 생활정보 그 자체이자 대상으로서 각광을 받는 현실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Ⅲ. 대규모 공예행사

2001년 공예계로서는 기념비적인 이벤트를 가졌다. 『세계도자기엑스포』와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바로 그것이다. 이 가운데 경기도 광주, 여주, 이천에서 개최된 도자기엑스포는 많은 점에서 이목이 집중되었다. 경기도 광주, 이천, 여주 등으로 연결되는 세라믹 벨트를 거점으로 하여 이루어진 도자기엑스포는 부정기 박람회와 정기적인 비엔날레를 겸한 것으로 도자예술과 산업에 커다란 전기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유감스럽게도 도자기는 오늘날 산업구조의 측면에서 볼 때 사양산업으로 분류되곤 한다. 도자기만이 아니라 전통적인 공예의 모든 분야들이 공통적으로 정체 혹은 퇴조국면을 맞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하였듯이 고도화된 산업구조로 말미암아 수공적인 전통적 예술과 산업이 새롭게 부각할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다. 도자기엑스포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예단하고 전망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특히 지역 내 특산업으로서의 요업을 2차적이고도 3차적인 산업적 다각화 전략이 광역 지역의 정책으로 채택되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도자기 자체만으로 보면 2차산업으로서 사양산업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도자기가 관광 등의 3차산업과 결합되었을 때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수요가 고정되어 그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도자기산업이 관광 등의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으니 좋고, 더불어 늘어나는 수용자들에 의해 구매력이 상승하여 더욱 좋은 것이다. 사실 광주나 여주, 이천 등의 지역은 이미 이러한 측면에서 많은 시도를 해 왔다. 그러나 그동안의 시도는 도자기산업이 3차적 산업으로서의 전환이라는 전망을 지역 주민들에게나 도예작가들에게 심어주질 못하였다. 문제는 지역의 모든 역량들, 즉 사회적, 산업적, 예술적 역량 등의 결집과 조화로운 유기성이 부족하였던 데 있다. 도자기엑스포는 바로 이런 점에서 성취도가 있는 것이다. 강력한 정책적 견인과 관료조직의 뒷받침에 도자기산업과 작가들의 호응, 시민들의 다양한 관심과 성원이 결집된 하나의 거대한 앙상블이 바로 도자기엑스포이다. 도자기엑스포는 또 하나의 성취를 거두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도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외연들을 흡수할 수 있는 기반과 장치를 마련하였다는 점에 있다. 많은 예산들이 투입되어 수많은 도자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과 도자기산업과, 예술의 모든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정보센터 등의 기반은 도자기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원천이다. 이번 도자기엑스포가 바로 이런 인식을 가지고 기반조성에 역점을 둠으로써 일단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도자기엑스포가 거시적 차원에서는 커다란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도자기산업과 예술은 개인으로서의 작가들의 능력과 역할이 큰 비중을 갖는다. 도자기작가들의 가장 직접적인 욕구와 여망은 아주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그 많은 것들이 직접 혹은 간접적인 방식으로도 잘 만족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거대화된 조직과 이벤트에서 소외된 많은 작가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은 더 깊어만 갔던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도자기작가들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건전한 유통체계 등의 문제들이 발전적으로 모색되지 않고 가시적인 성과물에만 치중한 엑스포의 내용들이 많은 작가들의 관심과 배치되었던 것은 재고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도자기엑스포에 비해 규모와 짜임새면에서 많이 뒤져 관심권 밖에 있었다. 무엇보다 외연기반을 확장하는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비전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비교가 된다. 공예산업과 예술이 지역 경제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역량의 결집과 장기적인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청주공예비엔날레의 경우는 이 점을 간과하였던 것 같다. 지나치게 평면적인 개최방식도 또한 문제이며 관객의 재미라는 측면이 마치 야시장과 같은 수준에서 호도되고 있는 것도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두번째로 개최되면서 보다 세련된 행사진행이 기대되었으나, 오히려 지난번보다 세련미나 신선감이 떨어지는 것도 호응과 관심을 반감시킨 요인인 것 같다. 오히려 도예, 섬유, 금속, 목공예 등의 장르별 윤번제를 실시함으로써 집중력과 효율성을 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다른 지역 행사와의 장르 중복을 피하는 것도 적지 아니 중요한 문제이다.

Ⅳ. 공예 전시현황

최근 몇 년간 공예의 전시활동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위축된 것은 의심할 수 없다. 미술관 기획전이나 비평적 이슈를 제기하고 나선 단체전들이 크게 줄고, 젊은 신예작가들의 발표전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공예계의 현실이다. 아울러 주도적인 이념이나 담론들이 없는 상태에서 창작의 금단현상 같은 것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공예계의 중진이나 원로들이 잘 움직이지 않고 신예들이 많이 활동하는 것은 역동적이고 참신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공예는 기술적 완성도를 무시할 수 없다. 오래도록 숙련되고 숙성된 장인적 기술과 경험은 공예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다만 젊은 작가들의 다소 미숙하나마 실험적인 시도들은 우리 공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실험성 속에는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고 적응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전략에 대한 실마리들이 담겨 있다. 바로 이 점이 세대를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한 것이다.

1. 도예

대체로 가장 전시활동이 꾸준한 장르는 역시 도예이다. 어느 정도 전통적으로 유지되어 온 시장과 유통체계가 존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약 10여년 전만 해도 실험성과 추상성이 짙은 도조(陶彫)나 오브제 도자들이 많이 퇴조하고 실용성을 추구하는 기(器) 중심으로 전향하고 있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실험적인 작업에 전념하였던 40대 작가들 상당수가 전통적인 작업으로 전향한 것이 바로 이를 입증하고 있다. 도자의 재료나 과정들이 가지는 특수성과 한계를 극복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오늘의 사회현실 속에서 우호적으로 지지되거나 인정받는 것에 좌절을 겪으면서 이러한 변화가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젊은 작가들이 진정한 도예다움이란 문제를 고뇌하면서 물레성형이나 흙의 물성을 극대화하는 기(器)작업으로 복귀하고 있는 경우나, 혹은 기 외에 우리생활에서 필요한 항목들을 흙으로 다양하게 소화한 작품들을 시도하는 등 디자인과 수공예의 혼합과 절충적 탐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2001년 한 해는 아무래도 도자기엑스포에 많은 역량이 집중된 까닭에 이렇다 할 단체전은 없어 보인다. 이런 가운데서도 국제라쿠심포지움이 주목할만하다. 과정상의 순발력과 우연성을 응용하여 관객과의 일체감을 중시하는 라쿠워크숍으로서는 최대규모인 국제라쿠심포지움은 결과에만 집중되는 도예의 수용체계상 과정에 비중을 부여하고 아울러 관객들의 흥미를 고조시켜 도예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환기한 것으로 평가될 만하다. 이밖에 규모는 비교적 작지만 우리에겐 생소한 스위스도예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전시 <스위스 현대도예전>은 내용적으로 알찬 전시로 평가받고 있다.
이밖에 25년의 관록을 자랑하는 <토전>, 대구대 출신 도예가들의 동문전으로 지방도예의 현황을 가늠케 하는 <흙누리14회전>, 16인 중견도예가들이 화분을 테마로 한 전시 <화분전>, 1998년 결성된 중견도예가들의 <그룹 일레븐전>, 가장 실험적인 성향의 작가군과 탄탄한 도자 기량을 보여주는 <질꼴전> 등이 기대 밖의 소득이다.
이밖에 개인전이나 소규모 그룹전을 일괄하면 다음과 같다. 잘 숙성된 장맛을 보여주는 것 같은 분청 다기들을 통해 자유로운 의식의 도예 진수를 보인 <이수종전>, 16년만에 백자를 다시 선보여 도예에 비상한 관심을 일으킨 <한익환전>, 대담한 색채대비가 돋보이는 젠 스타일의 <김선미전>, 설치로 각광을 받았던 경력을 뒤로하고 기원으로의 회귀(Return to the Origin)를 테마로 한 역동적이고 분방한 분청도화를 선보인 <최성재전>, 인체와 기 형상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도조를 선보인 <정진원전>, 다양한 표정의 얼굴 토우를 재미있게 연출한 <조경식전> 등이 하반기에 이목을 집중시킨 개인전들이었다.
상반기 전시들 가운데 비중이 있었던 개인전들은 다음과 같다. 명상적 인물의 도조가 눈길을 끈 <윤정선전>, 추상표현적인 도자로 개성을 뽐낸 <김연화전>,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자 <박정원전>, 다기 연출로 일본 특유의 진지한 도예정신을 엿볼 수 있는 <마에다 젠자부로전>, 다완의 <조일성전>, 환상적인 연리문 사발로 성가를 높인 <신철전>, 조명 등과 같은 다양한 오브제를 선보인 <최대열전>, 술병과 장군 등으로 오랫동안 분청작업을 해온 <김영기전>, 독특한 조각적 모델링이 돋보이는 <김동수전>, 질박미가 넘치는 도예로 각광을 받고 있는 <김대훈전>, 추상표현적인 접시의 <유미자전>, 기하적 구성이 독특한 <김은주전>, 가죽질감 묘사가 탁월한 수퍼오브제로 눈길을 끄는 <최주희전>, 질감이 풍부한 변형 도예의 <김덕희전>, 토기와 옹기의 <조일묵전>, 얼굴을 소재로 한 <최경화전>, 현대적 감각의 그릇을 선보인 <신창희전>, 기하적 도예를 선보인 <엄지윤전>.

2. 금속

공예가 여러가지 정체된 국면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금속분야이다. IMF 직후 한때 주춤하기는 했으나 경기가 회복되면서 장신구 중심의 금속공예가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과거 거대 규모의 실험성은 도예와 마찬가지로 퇴조하고 비교적 작고 밀도가 있는 주얼리나 테이블웨어, 혹은 다양하고 기발한 아이템 중심으로 창작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귀금속디자인협회가 주최한 <2001성남국제패션 & 주얼리디자인전>은 바로 이러한 시장의 흐름을 반영한 이벤트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C023그룹전>, 원을 주제로 한 <8인의 주얼리디자인전>, <가을장신구와 스카프전>으로 중견작가들의 금속과 섬유의 매치를 시도한 기획전들이 다양한 금속공예디자인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이밖에도 국민대대학원동문그룹인 <제2회 알케미스츠전>, 쓸모없는 쓰임, 일상적인 쓰임, 귀한 쓰임 등의 세 개념적 분류에 의해 금속공예를 정리하여 선보인 <보물찾기전>,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이 가장 왕성한 그룹 <금속제3그룹전>, <제17회전>이 두드러진 활약을 하였다. 가장 주목할만한 개인전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문 손잡이 장식으로 눈길을 끈 <홍성열전>, 금속병을 선보인 <김희선전>,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사물의 이미지로 눈길을 끈 <황지현전>, 기하적이고 밀도와 참신미가 넘치는 <김승희 장신구전>, 독특한 형태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전용일전>, 도예의 느낌을 내는 철조의 <김경환전>, 유리와의 매체 혼합을 시도한 <김기미 장신구전>, 금 은사 장신구의 <허영전>, 아카데믹한 진지함과 다양한 형태의 동 합금 작품으로 주목을 받은 <임옥수전> 등이다.

3. 섬유

공예의 실험 열기가 한풀 꺾이자 가장 두드러진 정체현상을 보이는 분야가 섬유이다. 가장 신축성이 뛰어나고 무한히 연출할 수 있는 매체 특성과 물성에 의해 지난 8, 90년대엔 다른 설치미술이나 이벤트 등에 많은 영감을 불어넣기도 했지만, 최근들어 그러한 실험적 열기가 급속히 냉각되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부단히 정진하는 작가들의 활동은 섬유공예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주목할만했던 개인전은 다음과 같다. 수직수평의 구성이 독특한 <이영애전>, 자연염으로 눈길을 끈 박태현과 홀치기염으로 목판본 이미지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주제로 한 이희자의 <2인전>, 원 구조의 이카트로 회화적 효과를 돋보이게 하는 <유정혜전>, 패치워크에 의한 기하적이고 회화적인 화면을 선보인 <박소영전>, 뉴웨이브풍의 자유로운 회화적 도상이 넘치는 타피스트리를 선보인 <강희선전>, 컴퓨터 직조에 의해 자연과 전통을 소재로 한 이미지의 작업을 선보인 <김옥현전> 등.

4. 기타

공예에는 도자, 금속, 섬유 외에 목칠이나 유리, 종이 등의 분야가 있다. 그러나 수적으로나 양적으로 그리 많은 것이 아니어서 간신히 명맥만 유지되고 있는 형편이다. 사실 공예의 장점은 아직도 전통적 재료 외에 끊임없이 새롭게 등장하는 재료들에 의해 새로운 공예가 태동할 수 있다. 아카데미 내에서 통용되고 있지 않으나 그밖에도 많은 재료의 공예활동들이 현대의 생활에서 요구될 때 얼마든지 탐구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종이의 경우는 전통과 역사도 있어 독자성이 인정되고 있으며, 섬유분야에 포함되기도 하나 회화 영역에서도 종이작업이 많이 나타나면서 독립성을 인정하기도 한다. 2001년 전주에서 국제종이문화축제의 <국제 종이작가 초대전>이 개최됨으로서 종이의 독립적인 조형적 특성이 여러모로 탐구됨과 동시에 두루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유리의 경우도 앞으로 상당히 각광을 받을 부문이다. 도자 못지 않은 실용적 기능과 입체성 평면성이 자유자재로 조절되며 투명과 불투명 등이 자유자재인 물성에 비추어 그것은 독립적으로든 의존적으로든 상당한 수요가 예상되고 있다. 아직은 대학에서 많이 다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보다 거대한 시스템이 도입될 때 상당한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유리의 경우 리드믹하고 투명하며 화려한 원색과 곡선이 풍부한 유리작품을 선보인 <김진미전>, 절제와 우아를 특징으로 하는 유리작품을 선보인 <김준용 유리전> 등이 주목된다. 한편 목칠의 경우 대학에서는 주로 가구디자인으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목공예나 칠이 감소하여 작가보다는 장인들의 몫으로 많이 남아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나전칠기 등도 장신구로의 응용이 연구되면서 앞으로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최환갑의 작품이 명맥을 잇는 역할을 하였다.

Ⅴ. 맺음말

전통적 의미의 공예는 아무래도 퇴조 혹은 정체되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제 새롭게 도래한 디지털 환경과 질서에 의해 공예는 디자인과의 유기적인 관계설정에 의해 앞으로 활기찬 발전과 도약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광역자치단체에서 사양산업의 하나인 도자기분야에 거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관광과 결합시켜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연 사례는 앞으로 많은 지역에서도 벤치마킹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예는 본질적으로 삶과 예술, 산업과 예술, 인간과 자연 등의 대립적 요소들을 원활하게 연결하는 매개적 역할을 해 왔던 터이다. 미래사회는 이러한 매개적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우리사회의 새로운 창조력은 이제 어떤 것이 새롭게 발명되는 것보다는 기존 혹은 기성의 요소들을 조합시켜 매개의 것들을 파생시킴으로써 발휘된다. 그것만이 훨씬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들이 지난 2001년에 목격되었다는 점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筆者 : 이재언 <미술평론가>